웃는 남자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85
빅토르 위고 지음, 이형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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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을 보러 가기 얼마 전, EBS에서 1989년도 개봉했던 작품 또한 방영해 준다는 소식을 듣고 알람까지 맞춰 놓고는 방영 시간에 맞춰 봤다. 2시간 반 이상의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길다기 보다는 더 알고 싶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불쌍한 사람들이란 의미의 레미제라블이라는 이야기 속의 모든 사람들이 너무도 안쓰러워 보였다. 1989년 개봉작 및 올해 개봉했던 2편의 레미제라블을 모두 보고 나서도 자베르 경감에 대한 심리 변화가 자못 궁금했기에 원작을 읽어봐야지, 라곤 했지만 5권으로 출간된 작품을 도저히 읽은 자신이 없어 포기하고 계속 시간만 흘러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레미제라블이 잊혀져 갈 즈음, 빅토르 위고의 또 하나의 작품인 웃는 남자가 영화화 되어 곧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빅토르 위고 자신이 자부하는 최고의 작품이라는 말에 레미제라블에서는 못다 이룬 원작을 읽어봐야겠다는 강한 갈망으로 인해 단숨에 이 책을 신청했으나, 역시나 그는 쉬이 그의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는 듯 하다.

, 하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라고 하기에, 그래 5권 보단 훨씬 쉽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이게 왠걸. 두께가 상상 초월이다. 왠만하다 싶은 책의 2권 정도의 두께가 각 1권의 두께이니, 사실 읽기 전부터 한숨이 나기 시작했다. 겨우 마음을 다잡고서 읽기 시작한 1권의 예비이야기에서 다시금 발목을 잡혔으니, 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다.

조커의 탄생 기원이라는 말에 흉악하고 포악한 인물의 등장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은 레미제라블 보다 더 안타깝고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가 웃는 남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도 실존했던 이야기들을 기반으로 해서 이 내용들이 써졌다고 하니, 대체 인간의 잔혹함은 어디까지인 것인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서는 동종의 인간을 어찌 이토록 참혹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마리오네트로 만들 수 있는 것인지. 흑과 백의 대비만으로 우월을 주창하던 노예제도와 다를 것이 없는 콤프라차코스를 보면서 이 혐오와 역겹 시대를 읽어 내려가면서 인간에 대한 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인간은 훼손된 존재입니다. 저에게 한 짓을 인류애게도 저질렀습니다. 저의 눈과 콧구멍과 귀를 기형으로 만들어 놓았듯 인류의 권리와 정의와 진리와 이성과 지성을 기형으로 뒤틀어놓았습니다. 저에게 그랬듯이 인류의 가슴속에 분노와 슬픔의 시궁창을 만들어 놓고 얼굴에다가는 만족이라는 가면을 씌워놓았습니다. -P 855


아이들을 매매하는 일이 다반사였으며 그들의 신체나 얼굴을 인위적으로 변화시켜 자신의 곁에 두는 것이 그 당시의 전해지던 악습이라고 한다. 인간의 액세서리화 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이러한 아이도 곁에 있어요, 어떤가요?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한 아주 희귀한 아이템이죠, 라며 너스레 떨었을 것만 그들이 실제 존재했었다니. 하지만 이 아이들은 그웬플레인 같이 얼마 지나지 않아 식상하다 혹은 필요 없다는 이유로 가차없이 버려지게 된다. 자신들의 욕망에 의해 발명해 낸 세계를 버리고 또 다른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 속에서 남는 것들은 그 추악한 인간의 본성만이 버려져 두둥실 떠오르게 된다.

웃는 얼굴로 버려진 그웬플레인은 바닷가늘 헤매는 도중 데아를 만나게 된다. 이미 죽어버린 엄마의 품에서 울고 있었던 데아. 눈 보라 속에서 장시간 따스한 엄마의 품이 아닌 차갑게 식어버린 그 안에서 데아는 눈이 멀어버리게 된다.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그 시점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그웬플레인과 데아는 서로를 의지하며 성장하게 된다. 눈이 멀어버린 데아에게 있어 그웬플레인은 더 없이도 완벽한 남자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웬플레인은 자애심 혹은 자신감 부족일까, 바라보는 것 이상의 관계는 지속되지 못한다.

나는 웃지 않고 있으나 누구나 내가 웃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또 그러한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운 듯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웃는다면, 과연 그 안에 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그웬플레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신은 사라지고 광대로서의 존재는 점점 드높아지는 순간 무대는 런던으로 옮겨지며 그래도 지금보다는 더 나빠질 것이 없겠지 라는 바람을 안고 계속 그의 여정을 마주하는 때면 또 한숨과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이 모든 거칠고 슬픈 운명을 종결 지어줄 것만 같은 여 공작의 등장은 그웬플레인의 모든 것을 바꿔버린다. 데아와 결합되어 있던 정신적인 사랑을 끊을 놓게 만들고 그웬플레인을 독차지 하려고 했던 여 공작은 그가 광대라는 존재일 때에 만이 그를 탐하게 된다.

광대로서의 그웬플레인은 집착에도 가까울 정도로 원하지만 신분이 복귀되어 자신과 같은 귀족으로서의 그웬플레인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그러진 욕망의 이름아래의 사랑은 웃는 남자를 만들어내고 그리고 또 어느 순간 지나면 내쳐버리는 우리네 현실과도 비슷하기에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필요라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만 존재할 가치가 있는 인간의 잔혹함과 그 가벼운 광기 어린 궁정 속 이야기는 웃는 남자로서의 인생을 살아야만 했던 그웬플레인의 모든 것들이 밝혀지며 콤프라차코스보다 더 추악한 모습들을 마주하게 된다.

실제 그웬플레인을 웃는 얼굴로 만든 것은 장본인은 콤프라차코스라 할 수 있지만 콤프라차코스를 만들어낸 더 위대한 괴물들은 고귀한 궁정 속에 한 가득 살고 있었으니 이 황망한 이야기 안에서 나는 어떠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자신의 인생에 있어 행복이라 말 할 수 있는 순간이었던 데아를 그들의 손아귀 안에서 바등거리는 동안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 삶의 모든 의미를 잃어버린 웃는 남자. 그 순간에도 그의 얼굴을 웃고 있다. 그 안에서의 그를 드러낼 수 조차 없이 세상이 마치 그를 도망 갈 수 없는 감옥에 가두어 놓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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