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 스물아홉, 임신 7개월, 혈액암 판정
이미아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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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아홉, 임신 7개월. 여기까지만 해도 나는 저자의 삶에 대해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바람을 어릴 때부터도 막연하게 가졌었기에 20대의 목표 중 하나였던 임신이라는 축복의 경험을 하고 있는 그녀가 자못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축복을 뒤 엎어버리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혈액암 판정이다. 스물 아홉의 나이에, 임신 7개월의 상태에서 발견한 혈액암의 존재. 이 세 마디의 문구 중 마지막을 읽으면서 뭐랄까, 순간 얼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주변의 임신한 지인들만 보아도 한 순간 순간 모든 정성을 쏟아 붇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먹는 것부터 파마나 염색은 절대 생각지도 않고. 하물며 좋은 것만 보고 들으라는 이야기와 같이 태교에서부터 자신의 습관들까지도 모두 고려하고 생각하고 있으니. 뱃속의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 여자는 하나의 생명체가 아닌 두 개의 심장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어느 때보다도 주변과 자신을 경계하고 철저히 자신을 지키고들 한다

 그런 그 순간에 발견한 암의 존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저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나의 생명을 오롯이 책임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애쓰고 있는 그 순간에 드리워진 생각지도 못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다행히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굳건히 오늘까지 자신과 아이들을 지키고 있었다.

 엄마는 너희에게 나는 이렇게 성공했다라는 이야기보단 나는 이렇게 실패하고 다시 일어났다는 말을 더 많이 해주고 싶어. ‘내가 이렇게 해냈으니 너도 이렇게 할 수 있어라는 말보다는 나도 이렇게 실패했다. 실패의 지점은 누구나 비슷하니까 섣불리 낙담하고 스스로를 옥죄지 마라고 말해주고 싶어. –P 14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온전히 이 저자와 그녀의 아이들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연령이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었을까? 나의 스물 아홉 역시 격정적인 한 때를 보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녀에 비하면 나는 참 행복했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엄마가 된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에게만 초점을 맞춰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누군가의 딸이자, 며느리이자 또 아내의 역할도 함께 존재한다. 또한 누군가의 친구이자 동료였으며 선배 혹은 후배였을 것이다. 그 수 많은 역할들을 뒤로하고 엄마로서의 그녀만 생각하다니. 여전히 내가 본다고 하는 것들은 몹시도 한정적이구나, 이기적이면서, 라고 생각하며 계속 책장을 넘기게 된다.

 무뚝뚝한 남편의 반응과 그다지 달라진 것 없는 친정 부모님의 모습들. 그녀를 대신해서 아이들을 봐주고 계신 시어머니부터 엄마가 아프다는 것을 어렴풋이만 알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휘청거리게 된다. 행복한 삶의 영역에서 어느 새 어두운 암과의 사투를 벌여야 하는 그 요단강은 건너는 순간부터 그녀에게 이 수 많은 역할극은 때로는 버겁기만 하다. 일단 살수 있을까, 살아야 한다, 살고 싶다는 생각들이 먼저였으니 말이다.

창백한 아이의 얼굴과 그 어머니를 보며 속으로 기도했다.

하느님, 제 아이들 대신 제가 아파서 정말 다행입니다.” (중략)

난 부모님께 정말 이기적이었다. 내 아이가 아프지 않아 다행이라는 기도를 하면서야 비로소 그 아픈 진실을 깨달았다. –P79

 그럼에도 그녀는 아이들과 자신을 지켜봐 주는 가족들과 그리고 주변사람들의 바람들과 그 동안 그녀가 자주 읊었다는 한시의 힘을 빌어 다시금 세상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지금까진 암 투병이 내 인생의 바닥이었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많은 바닥을 만나게 될 것이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더 깊은 바닥도 만나게 될 것이다. –P178

이 세상을 등질지도 모른다는 30%라는 숫자를 벗어나기까지 70%의 생존 가능성보다 30%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크게만 느껴졌을지. 자신과 자신 때문에 주변까지 힘들어 하는 그 아픔을 시간들을 견뎌왔기에 살아있어야만 걱정도 할 수 있다는 그 말이 참 아련하면서도 다행이다 싶었다. 모든 것을 이겨내고 웃을 수 있으니 지금 이 책을 나도 마주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책을 덮고 나서 자꾸 그녀의 일상들이 더 궁금해진다. 지금은 또 어떤 모습일지, 아이들에게 예쁜 엄마가 되겠다는 약속과 함께 자신을 위해서 운동을 시작한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보면서 더 이상 민머리가 아닌 봄날에 머리를 한 켠으로 넘기며 주변 모든 이들과 이 날들을 즐기고 있었으면 한다. 그녀에게는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해야만 하는 확고한 사랑이 그득히 있기에, 그럼에도 또 언젠가 드리울지도 모를 바닥 치는 날들도 지금처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란 믿음으로 나는 행복한 그녀의 모습만을 기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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