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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지 - 개정판 ㅣ 에디션 D(desire) 1
조세핀 하트 지음, 공경희 옮김 / 그책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아들의 연인을 사랑하게 된 한 남자의 비극적인
삶, 그녀를 만난 순간 내 삶은 끝나 버렸다. 라는 이 한
줄로 이 책의 모든 것을 다 알았다고 생각했다. 아들의 연인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아버지라는 사람과 그
두 사람 사이에서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모두를 파멸시켰던 한 여자를 만나기 전이었음에도 이미 그들의 행위에 대해 ‘미친 짓’이라고 규명 지어 이해 할 수 없는 족속들이라며 혀를 차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전에 이미 그들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될 끔찍한 참극이라며 읽기도
전에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생각에 빠져 읽는 다 해도 나는 그들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 했다.
어느
순간에 그들은 예비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아니라 세상에 둘도 없이 서로를 갈망하는 대상으로서 존재하게 되어버렸다.
막장 드라마라는 이야기들이 나도는 요즘에도 만날 수도, 심지어 상상할 수 조차 없던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는 그 과정 속에서 ‘역겨워’라는 생각들이 어느
새 점점 희미해 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무엇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에 빠져 이렇게 빠르게 읽어 내려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점차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지도 모른다. 이해하는 순간 그들의 삶을 인정하게 되고 그렇다면 나는 그들이 만든 참극 속에서 함께 뛰노는 형상이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 아직도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그들에게 손가락질 하며 비난을 퍼부을 수 만은 없다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50세 되는 해에 죽지 않았다. 현재 나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비극으로 여긴다. –본문
에디션 D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인 데미지는 1992년도에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는 도중에 궁금하던
차에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에 발견해서는 지금 상영하는 영화관을 발견하고서는 꼭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실로 무서운 마력을 가진 책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듯한 50대의 남자는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 야망은 모두
이루어졌다. 모두 나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졌다. 축복받은
삶이었다. 괜찮은 삶이었다. 그런데 이게 누구의 인생이지? -본문
아버지의
요구에 의해서 삶을 살아오던 그는 의사가 되었고 지금의 부인을 만나 장인어른의 권유에 의해 정치계에서도 꽤나 인정받는 사람으로 살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살고 있는 듯한 느낌, 누구나
바라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는 자신의 삶이 마치 다른 사람의 옷을 어설프게 걸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자기 주변의 세상은 모두 파멸로 이끈다고 믿고 있는 한 여자, 안나는 갑작스레 그와 그의 아들이었던
마틴의 삶에 드러내면서 모두를 휘감아 버린다.
“안나는 여러 사람에게 엄청난 아픔을 안겨주었지요. 제 견해로
그 애는 전혀 잘못이 없습니다. 하지만 안나가 재앙의 촉매제이기는 합니다. 마틴은 다를지 모르겠군요. 그는 안나를 내버려두는 것 같아요. 안나에게는 그게 아주 중요합니다. 누군가 제지하려고 들면 안나는
싸울겁니다. 누구도 안나를 부술 수 없습니다. 그 애는 이미
부서졌거든요. 안나는 자유로워야 합니다.” –본문
안나와 그는 마주치는
순간 그들이 서로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보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손댈 수 없을 만큼, 그들은 사회가 그어놓은 틀을 벗어나 위험한 레이스를 펼치게 된다. 단지
서로를 원하기에 갖겠다, 라는 1차원적인 욕망만을 위해 움직이기에는
그 모든 것들이 말도 안 되는 허상이자 반란임을 알면서도 그들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 나아가려고만 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 안에서 그의 심리 변화는 다채롭다 못해 너무도 진실되어 무서울 정도였다.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의사이자 정치가로서 그는 그 가면의 틀 안에서 어느 정도 잘 살고 있는 듯 했지만 실상
그는 너무도 외로이 고립된 존재였다. 그러던 그는 안나를 통해 숨겨져 있던 자신을 드러내며 점차 그
모든 가면들을 내려놓고 한 여자를 갈망하는 남자로만 남겨지게 된다.
가질
수 없기에 더욱 갈망하게 되는 바다에 표류된 인간처럼, 그는 죽을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바닷물을 마실
수 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이것만이 유일하게 그를 살 수 있게 해주기에 그는 미친 듯이 바다 속으로만
들어가려 한다.
내 사연을 당신에게 보고하는 데 고작 하룻밤밖에 걸리지 않았네요. 사는
데는 33년이 걸렸고요. 그 일상성은 모두 사라졌고 다른
것들도 사라져버렸어요. 그러니 애스턴의 몇 쪽 안 되는 인생도 마찬가지고요. 당신의 삶에서 내게는 몇 쪽이나 할애되나요? 누구의 인생사든 한
두 개의 기사거리가 될 수 있겠지요. 전기 작가가 몇 년간 조사를 하면 한 권의 책이 나올 테고, 독자는 2,3주면 그 책을 다 읽을 수 있어요. –본문
그래, 나는 단 이틀 만에 이 책을 다 읽어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을
모르겠다. 처음에 비해서 무조건적인 비난이나 힐책은 아니지만 과연 안나와 그가 진정으로 바라던 삶이
그들에게 펼쳐 진 것인지를 모르겠다. 잃어버린 자신들을 찾기 위해서 그들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의
시간을 던져준 것이 아닐까? 나를 찾기 위해서 그 무엇이든지 다 버릴 수 있는 것이 나를 알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일까?
역겨워, 더러워, 라는 생각 대신에 이것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만 가득 남겨준다. 과연 나는 그들처럼 나만을 위해 타인을
이용했던 적이 없었는가? 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나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타인의 삶을 잠식한 적은 없었는지. 상처를 치유 받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그 만큼을 생채기는
내고서야 치유 받을 수 있는 것인지.
한
참이 지난 후에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영화도 찾아봐야지. 영상으로
마주하는 데미지는 어떠할지. 영상으로 그들을 다시 마주하면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