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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인문학독서법 - 삶의 기적을 일으키는 인문학 독서법의 비결
김병완 지음 / 북씽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대학교 다닐 때 도서관을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도 정작 도서관이라는 장소를 책을 보는 곳이 아닌 아닌 그저 열람실을 이용하는 그 수단으로만 이용 했다 보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으로는 층마다 인문서적과 사회, 자연과학 서적 등이 나뉘어 있었던 것 같았는데, 그나마 책을 읽어볼까 하며 올라가서도 매번 소설만 찾아 읽던 내게는 철학이나 역사 코너는 스쳐 지나가기만 하는 하나의 통로로만 이용해왔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는 동안 인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부터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인문학이 뭐야? 라는 정말 멍청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나는 진정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인문학으로 규정해야 할지를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모든 것의 근본이 된다는 철학에서부터 인문학의 시초로 보면 된다는 그의 말을 듣고 나서, 역시나 그래서 나는 인문학이라는 것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말마따나 그저 일반서적을 읽으며 그 동안의 독서를 하지 않았던 내 자신을 다독이며 더 많이, 더 빨리를 외치고 한 권을 읽어 내려가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으니 말이다.
하루 아침에 지식을 얻을 수는 있으나 삶의 지혜를 얻기에는 부족한 일반 서적을 한 권씩 읽어나가며 그래도 아무 것도 읽지 않는 것보단 낫잖아, 라며 내 독서 패턴에 대해 담대한 면죄부를 쥐어 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솟아나는 지식의 갈망을 느끼면서 오랜 시간 동안 책을 멀리 했기에 그로 인해 나의 바닥이 채워지지 않기에 계속해서 그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채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것들로 채워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고 양으로 그 질을 충족 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7만 가지의 생각들을 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그런데 그 7만 가지 생각들 중에 80% 이상의 생각들은 어제 했던 바로 그 생각들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 독서는 우리로 하여금 생각의 회로 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니체가 망치로 철학 하는 법에 대해 언급했듯이, 인문학 독서는 우리의 얼어붙어 버린 의식의 세계를 깨뜨려 주는 망치와 같은 것이다.
우리의 삶과 질과 인생의 크기를 결정짓는 것은 바로 인문학 독서이다 –본문
저자는 일반 서적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왜 인문학을 읽어야 하는지 그리고 인문학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 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일반 서적에서는 필요한 정보들 만을 걸러내어 그 안에서 필요한 것 지식들을 얻을 수 있는 반면 인문학 서적에서는 단 한 권 책 만으로 끊임없는 철학적인 질문들을 통해서 무한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상상력을 키우게 되므로 이는 곧 생각의 틀 자체를 바꾸게 하는 것이다.
인문학이 상상력의 산물이기에, 인문학을 읽으면 우리의 상상력이 향상될 수 있는 것이다. 인문학이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고 만나게 되고 부딪히게 되는 모든 문제를 다루고 그것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에 인문학을 읽으면 인간에 대해, 타인에 대해 더 잘 공감할 수 있게 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공감과 이해는 어떻게 대응하고 대처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해답과 힌트를 제공해 준다.
역사의 경우에는 더욱 더 명확한 인간관계와 처세애 대해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면, 인간의 심리와 인간을 더욱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게 해 준다. 뿐만 아니라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사회 동물인지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철학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철학을 통해 인간은 무엇을 중요시 여기고, 무엇에 유혹을 받고, 무엇을 갈망하는 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고, 무엇 때문에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고, 무엇보다도 인간 그 자체가 과연 무엇인지? 에 대해 접근 할 수 있게 된다. –본문
일반적인 설명만 나열되어 있다면 여전히 나는 뜬구름을 위에 서있는 것 마냥 계속해서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더디게 읽히는 책을 앞에 두고서 포기하거나 그 안의 내용을 읽고 이해하고 깊은 생각을 하기 보다는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은 페이지를 읽었는지에 초점을 맞춰 시간 당 읽은 양을 보고서 도무지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를 보며 가독력이 없는 책을 원망하고 그 책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을 힐책하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인문학을 보고 있었을 때처럼 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저자는 인문학의 문외한인 나에게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 지에 대해 직접 설명해주고 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며 인간은 누구인지에 대해, 국가의 질서는 지킨다고 지켰지만 자신의 가족은 지킬 수 없었던 운명 앞에서 국가와 가족 중 무엇이 더 중시되어야 하는지 등의 질문을 던지며 그 안에서의 내용을 곱씹어 보도록 유도하고 또 그러한 과정들을 철저히 설명하고 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보면서도 그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이 저서가 그 모든 정형화된 형식을 탈피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그 시대에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고 한다. 10년 동안 산에서 살다가 마을로 내려오게 된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을 향해 초인을 가르치노라, 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마 혼자서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나는 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라며 니체를 원망하고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그가 저서한 다른 책들의 내용들을 함께 정리하여 니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몇 권의 책을 읽었느냐 보다는 어떠한 책을 읽었느냐가 중요하기에 성공한 사람들의 비밀은 서재에 있다고 이야기 했을 것이다. 단순히 많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책을 읽었는지, 한 시간에 몇 십 페이지를 읽어 내려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페이지라도 제대로 읽고 생각하는 것이 제대로 된 인문학의 독서방법이다.
아마 나는 이 책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여전히 고전이나 철학 앞에서 빠르게 읽어 내려가지 못하는 내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 권을 얼마 만에 읽느냐 보다 그 안에서 어떠한 것을 배우고 생각할 수 있는지, 일반서적과 인문서적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를 배울 수 있는, 독서에 대한 편견을 타파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