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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공간 - 남자는 가끔 행복한 혼자를 꿈꾼다
이문희.박정민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소파 위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는 책을 보며 남자친구가 물었다.
“당신이 이 책을 왜 읽으려는 거야?”
남자의 공간이라는 제목도 제목이겠지만, 어떠한 것을 알고 싶기에 이 책을 읽으려 하냐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그에게 내가 했던 대답은 ‘아빠에 대해서도 이해해 보고 싶고, 당신도 알고 싶어서.’였다. 삼십 여 년을 가족이란 이름 하에 함께 지냈던 우리 가족 중 유일한 남자였던 아빠와 한 평생의 반려자로서 함께 하고자 하는 남자친구. 모두 남자라는 공통분모로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과연 나는 그들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또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단지 내 주변의 남자뿐만 아니라 문제가 생기면 골방에 들어가려 하는 보통 남자들의 심리가 자못 궁금하기도 했으며 그들의 공간을 몰래 엿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도 이 책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근본적인 이유는 내 곁의 남자, 그 두 사람에 대해 좀 더 알고 이해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서문에서도 언급했듯이 단지 남자만을 위한 책은 아니라 생각된다. 상담자들이 남자이고 그 상담 내용을 기반으로 인간의 심리에 대해 기록해 놓은 것이지만 비단 남자만이 가지는 문제가 아닌 그 안에 나의 문제들도 종종 마주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남자의 공간이란 제목이 선택된 이유는 그 무엇보다 남자들의 입장에서 남자들의 이해하고 그들 스스로도 모르는 대한민국의 남자를 가감 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다. 남자로서의 강인함을 나타내는 이 말을 들여다 보면 우리나라의 남자들에게 요구되는 남성상을 알 수 있는데 그 어디에서도 감정을 드러냄 없이 남자로서 굳건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감정에 치우치기 보다는 남자라는 직위에 맞는, 남자라는 가면을 벗어나지 않는 삶을 요구하고 있으며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이 암묵적인 요구에 그들은 자신의 눈물 조차도 함부로 흘릴 수 없게 하고 있다.
페르조나를 외적인격이라고 칭한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융은 “어쨌든 남자는 남자가 되는 일을, 여자는 여자가 되는 일을 완수해야 한다.” 라고 말하여 인격형성 및 인간관계에서의 페르조나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본문
가면이라는 의미의 페르조나.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자신의 위치에 맞게 행동하라는 사회가 주는 무언의 압박 속에서 살고 있다. 아빠의 페르조나, 상사의 페르조나, 남편의 페르조나 등 타인에게 보며지는 페르조나에 집중하다 보면 실제로 그 안에 내가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 페르조나의 재앙이라고 하는데 가면과의 과한 동일시로 인해서 내가 아닌 페르조나만 남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페르조나만 존재하는 세계는 내가 없는 세계로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을 시에는 페르조나는 잠시 내려두고 나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권유하고 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자신 만의 공간인데 물질적인 공간이든 자신 내부의 공간이든 어느 곳이든 상관 없이 혼자만의 독립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며 남에게 보여주는 내가 나를 지배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도 반가웠던 것은 며칠 동안 칼 융의 심리학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져 그 해석본이라도 구하고 싶었던 차에 페르조나를 벗어나는 방법에 있어 그의 주장을 이곳에서 다시 만난 것이었다.
융이 말하는 전체성은 무의식과 의식의 통합을 이야기 하지만 이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정신적인 문제라는 것은 자기로부터의 소외와 단절에서 비롯되는데 이러한 단절은 우리가 전체로서 자기로 살지 못하고 의식적인 부분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무의식과 의식이 분리되어 대립하게 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정신적인 문제를 말하는 것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융은 ‘개성화’가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의식과 무의식이 조화로운 균형이 잡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해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그 무엇보다 매 순간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페르조나 안의 나를 이해해야만 무의식과 의식의 통합으로 내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싫어도 좋은 듯이 웃고 도움이 필요할 때면 기꺼이 그들을 돕고 누군가에게 양보하는 등 나의 삶에 있어서 내가 가진 사회적 페르조나와 그 이외의 또 다른 가면이 내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수용전념치료를 통해 인식의 변화를 연구한 스티븐 헤이즈는 우리가 이제까지 줄곧 사용해 왔던 ‘효과도 없는’ 이 방식을 ‘모래늪’의 비유를 통해 설명한다. (중략) 즉 고통을 피하려는 우리들의 방식은 이제 더 이상 효과적이지도 치유적이지도 않다. 고통을 피하려는 우리들의 방식은 이제 더 이상 효과적이지도 치유적이지도 않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역설적인 답을 가지고 있다. ‘피하기보다는 맞서기’ ‘외면하기보다는 경험하기’이다. ‘기꺼이 경험하기’가 바로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본문
총 3단계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 속의 남자들 이야기를 보면서 그 안에서 나의 문제를 인지하고 문제를 들추어 내고 진정한 나를 마주하게 되며 어느 샌가 스스로 툭 털고 일어설 수 있는 나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고통이 파도 치며 몰아오는 동안에 억압하며 나를 드러내지 않거나 혹은 타인에게 이 모든 고통을 전가하는 것이 아닌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것. 즉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 하는 장치들을 잠시 놓아두는 그 용기가 필요함을 알려주고 있다. 한 순간의 술이나 쇼핑 등으로 문제를 잠깐 동안 잊을 수는 있겠지만 진정한 나의 심리적 문제를 외면한 채로는 그 무엇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을 알고 싶다는 바람으로 시작한 독서의 여정 동안 오히려 그 안에 나를 찾아가는 길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는 것만으로도 나뿐만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는데 있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에 이 독서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여자들에 비해 남자들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기에는 제약이 따를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반증하듯 이 책이 실존하는 씁쓸한 것도 사실이지만 비켜 갈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누구든지 그 시간을 이겨낼 수 있는 탄성력이 부여해 주는 이 책이 있다는 것이 또 다행스러우면서도 고맙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