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 영화 '남영동 1985'의 주인공 김근태 이야기
방현석 지음 / 이야기공작소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복잡하면서도 난해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 듯한 정치의 세계를 보고 있노라면 괜히 머리가 아파오고 답답한 마음에 차라리 모르쇠의 자세를 일관하여 회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신문이나 뉴스에 정치에 관한 것들을 마주치게 되면 자연스레 신문을 덮거나 채널을 바꾸며 정치와 나와의 연결 자체의 끈을 모두 놓아버렸다. 관심이 없으니, 그리고 내가 관심을 갖는지 여부에 관계 없이도 그들이 세상은 잘 돌아가니 굳이 그것에 끼어들 생각 없이 지나왔었는데 어제를 보내고 오늘을 회피하며 지나온 나는 비단 오늘날의 정치가 아니라 역사로 쓰일 하루하루를 과거라는 이름으로 흘러 보내고만 있었다.

 얼마 전 남영동 1985’이란 영화가 개봉했다, 보고 싶다던 곁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저 무심히 듣고만 있었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해서 영화를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에서 잠시 만난 적이 있었기에 대략적으로 알고는 있었으나, 그 내용이 그다지 끌리는 소재가 아니어서 보기가 꺼려졌다. 고문에 관한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에 보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안고 2시간 가량 스크린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 것만 같았기에 아직까지도 이 영화를 보지 않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남영동 1985라는 영화 속에서 내가 알아야만 하는 것이 고문이라는 참담한 사건을 뛰어넘어 그 안에 무엇 때문에 누가 왜 이런 일을 당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누구에 의해 이런 일들이 자행됐는지에 대한 것들이었다.

 이제 고인이 되어버린 김근태 의원. 그는 무엇을 위해서 그 험난한 시간을 보내왔던 것일까? 그가 이루고자 하는 것들이 무엇이었기에 젊은 시절 내내 고통 어린 시간을 견뎌 왔던 것일까?

23일간의 남영동에서의 시간 때문에 그는 남겨진 평생의 시간 동안에 후유증을 안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고문했던 자를 용서한다고 했다. 모두 국가를 위한 것이라 했지만 그들 서로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그 방향성이 달랐기에 그들은 역사에 있어 서로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자신과의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나의 삶을 송두리째 뒤 흔들어 버린 그 당사자를 나라면 과연 용서할 수 있었을까?

자신이 알고 있던 것들이 부당하고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모든 것을 내 걸고 바로 잡기 위한 그의 혈혈단신 민주화를 위한 발걸음 마다 뒤 이어 오던 어두운 그림자와 압박 속에서도 그는 굳건히 자신의 정도를 찾아간다.

이미 가지고 있는 자는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르기 마련이다. 민주화의 시대를 타고 났기에 나는 지금이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고 그저 당연한 것들이라고만 생각했다. 누군가는 이 나라에 오늘과 같은 시간이 도래하기를 바라며 당당히 맞서 이 소중한 것들을 이룩해 냈음에도 그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지금 순간 조차도 집중하지 않고 타인의 삶인 듯 간과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이 소설 속 아름다운 제목이 김근태 의원에게는 삶의 그 어떤 순간보다도 끔찍한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다시 볼 수 없는 그이지만 지금에라도 그를 만날 수 있어 다행이면서도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그와 함께 할 수는 없지만 그가 지키고자 했던 그 신념들, 그리고 바라던 세상에 살고 있는 오늘을 감사히 생각하며 더 이상 오늘을 헛되이 보내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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