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의 연인들
김대성 지음 / 문화구창작동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들렀던 남산 공원의 철조망에 무수하게 주렁주렁 얽혀 있는 자물쇠들을 보며 이 자물쇠를 걸어두는 두었던 그들은 이 곳에서 무엇을 바란 것일까 란 막연한 호기심이 일었다. 커플의 데이트 코스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곳에 이토록 수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 영글어 잠든 자물쇠는 무엇을 담고 있는 것 일까. 남산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었듯 앞으로 드리워질 그 시간 속에서도 둘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 사랑이라면 왜 나는 사랑이 무엇이라는 단순한 질문에 쉽사리 답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너무 흔하게 보고 들을 수 있는 그 단어 안에서 과연 사랑이란, 그 원형이 무엇일까 라는 단순한 물음은 턱 하니 막혀버린 담벼락 안으로 점차 나를 밀어내는 기분이었다.

보통 사랑이라고 일컫는 것에 대해 연관되어 떠오르는 것들 그러니까 흔히 낭만적이고 핑크 빛이 발광하는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것은 중세와 근대의 시기에 유럽에서 문학이 만들어 낸 형태의 것이 우리에게 잘 인식되어 있는 것이라 한다. 죽음을 넘나 들며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그들이 만들어 낸 로맨스가 어느 새 우리에게는 사랑이라는 형태로 자리 잡아 그 형체를 고스란히 답습하여 그것을 사랑의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풀지 못한 난제를 손 안에 쥐고 전전긍긍하던 내게 사랑이라는 개념이 생겨나지 않은, 온갖 규율과 형식의 통념이 지배하는 문명이 탄생하기 이전,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의 원형을 말하고자 한다는 띠지의 선명한 문구는 그 어떠한 것보다도 강렬하게 이 책으로 빨려 들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중세와 근대 이전에는 사랑이란 어떠한 형태로 존재했는가? 라는 질문을 기반으로 하여 쓰여진 이 소설은 낭만이라는 요소는 철저하게 배제하며 사랑이라는 그 나약하면서도 위험한 본질을 백장우와 백광수의 부자 관계의 틀 안에서 샅샅이 드러내고 있다.

낙원의 연인들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그 표지는 매우 어둡고 무언가 혼탁해 보인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쉼 없이 읽어 내려가는 동안에도 너무도 거칠고 상처를 도려내는 듯한 그들의 처절한 인생사는 사랑의 본질 보다는 인간이라는 이름 하에 그들이 안고 있는 본질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장생포의 바다처럼, 그 안에서 고래를 잡고 사는 백장우와 백광수는 거칠다 못해 흉악한 인간의 표상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끔찍하게도 증오했던 그 아들은 어느 새 그 아비만큼이나 악을 안고 사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그들도 한때 연약한 존재의 시간이 있었다. 그들이 간절히 지키고자 하던 그 순간을 놓쳐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귀신고래가 새끼와 그 어미를 잃은 것처럼, 그들 역시 눈 앞에서 천생배필을 잃는 순간 그들 스스로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버리고 오로지 악으로 영겁의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과연 그들에게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사랑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아니라 오늘과 같은 내일을 함께 하는 소소한 하루의 계속을 바랐던 것 일까. 어쩌면 귀신고래를 향해 작삭을 던지는 그 순간부터 그들의 바람은 무참히 깨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존귀한 행복을 산산이 부셔버리면서 내 것은 지켜지기 바라는 비뚤어진 바람은 결국은 자기 자신을 좀 먹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책을 덮고 나서 오히려 더 복잡한 굴레로 빠져든 느낌이다. 단순히 사랑의 원형에 대한 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었는데 너무 쉽게 그 답을 얻을 것이라 기대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낭만보다는 인간이 숨겨져 있는 욕망을, 광포하고 섬뜩하지만 그 안에서 가장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을 끄집어내어 드러낸 이 책 앞에서 사랑이라는 그 단어가 무력하게만 보인다.

귀신고래가 돌아오는 날에는 소원이 이뤄진다고 했다. 저 멀리서 귀신고래를 타고 있는 분희와 백장우를 보며 그들의 이그러진 삶이 그 안에서는 평온하기만을 고대해 본다. 그리고 현실에 남아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백광수와 이해수에게도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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