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감 - 씁쓸하고 향기로운 야생초의 유혹
아리카와 히로 지음, 오근영 옮김 / 살림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사랑에 관해서도 식물이나 동물도감과 같은 것들이 존재 한다면, 그간 연애의 시간 동안 나는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을까? 이런 사랑이란 위험하고 떫으며 생채기만 남기니까 접근하지 말 것, 또 이런 형태의 것은 화려하진 않아도 진득하니 해바라기처럼 당신을 향해 있을 테니 무조건 그 곳을 향해 날아 들 것. 아마 이러한 도감이 있었다 한 들 나는 그 문자들 사이에 여백 가득히 나만의 도감을 남기기 위해 불나방이 되어 뛰어 들었을 것이다.

 책을 다 덮고 나서 문득 든 생각은 나는 이 책의 그네들의 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 란 황막한 질문 만이 맴돌았다.

 죽어 버린 연애 세포를 다시 활성화할 달콤 쌉싸래한 소설!

 날로 건어물 지수를 높여 가는 도시의 워킹우먼들을 위한 필수 연애성분공급 소설.

넘실대는 유혹의 띠지 안의 문구를 보며 다시금 연애에 대한 설레임 가득한 시간으로 빠져 볼 수도 있게 다는 기대를 가지기도 했다. 이 소설이 동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완벽한 사랑의 결말이 결혼이라고만 꿈꾸던 10대의 나에게 옥탑방 고양이란 드라마는 충격 그 차체였다. 달달한 축복의 하루를 갈망하던 나에게 결혼이란 한 낱 종이 엮인 남녀에 지나지 않았고 각종 의무와 책임을 요구하는 대신 그 자리에는 동거라는 쿨한 관계가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에도 꽤나 파격적인 소재로 이슈화 되었던 그 드라마 속의 주인공을 나는 이 소설 속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고 그 때의 그 불편한 시각은 여전히 나를 종용하며 사야카와 이츠키의 이야기를 독자가 아닌 아니꼬운 비평가마냥 그들을 헐뜯기에만 채근하기 시작했다. 

 주어갈래요?” 로 시작된 아찔한 동거는 그들만의 레시피를 완성해 가며 계절이 바뀌는 동안 지속된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인생에 날아든 그가 한 명의 노숙자에서 나만의 사람으로 되기까지 그 시간을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함께 요리를 위한 재료를 채집하고 식물 하나하나의 이름을 알아가면서 그들의 요리책이 두꺼워 질수록, 내 손안에 남아있는 페이지는 점점 가벼워질수록 왠지 모를 두려움이 앞서게 되었다.

 주변의 연애사를 들어보면 시시콜콜한,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것들이라지만 당사자의 눈에는 그 미세한 신호조차도 폭풍과도 같은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동거로 시작한 그들의 이야기도 별 다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랑이야기다. 다만 그 시작이 남들과 달랐다는 것이 특이한 관전 포인트라면 포인트겠지만 말이다. 뻔하지만 그럼에도 그 뻔함이 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길 원했지만 보는 내내 비판하는 태도로 그들의 이야기를 바라본 나는 그들과 함께 동화되지 못하였다. 알량한 자존심에 그들의 처세는 나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으로만 보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으니 중도에 포기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지만 한편으론 서글퍼 지기도 한다.

 타인에게는 무지막지한 도덕적 잣대를 드리우며 그들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꼬집어 내려 하는 나는 소설 하나의 감성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무채색의 인간이 되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 하나의 다른 형태를 가진 그네들의 이야기에 한 번이라도 이해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끝까지 팽팽한 선을 그어 나를 포기 하지 않으려는 줄다리기는 시답잖게 끝나버렸다.

제멋대로의 아집으로 똘똘 뭉쳐 버린 나만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준 씁쓸하기만 한 이야기. 잡초라는 풀이 없듯 이 당신들의 사랑도 짓밟히고 손가락질 받아야 하는 것들이 아닌 그저 또 다른 형태라는 것, 그거 하나만 안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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