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 2012년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전민식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또 당첨과 같이 한 순간의 인생역전을 꿈꾸는 동안 달달한 미래만을 그려보게 된다. 도랑이 시골집에서 뛰쳐나와 대학을 다니고 도시에서 직장생활 하기를 염원하며 스타벅스의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가족이란 지긋지긋한 굴레를 벗어나려 발버둥 쳤을 때,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었던 은주를 갖고자 했을 때. 그는 자신이 소망하던 것을 하나씩 이뤄나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생각만 했을 뿐 그에게 어떠한 시련이나 고난이 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뒤집혔다. 잘나가던 컨설팅 회사의 전략가로 손꼽히던 그는 사랑이라 믿었던 여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만다. 직장도 사회적 명예도 가진 돈마저 모두 빼앗기는 상황에서 그는 은주가 자신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도 그녀를 대신해서 자신이 모든 죄를 뒤집어 쓰고 환상에서 쫓겨나게 된다. 바닥으로 곤두박질한 상황 속에서도 그녀에 대한 순애보는 달라지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한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남자 주인공은 참 멋있게 보이기만 했는데 현실 속의 도랑을 보노라면 씁쓸하기만 했다. 되려 그의 미련함을 질책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은주를 사랑했던 것인지 은주와 사랑했던 그 시절을 사랑했던 것인지, 지금 당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도 그 알량한 사랑 타령만 할 수 있는지. 이것이 남자들이 말하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어찌되었건 은주를 통해서 도랑은 현실은 잠시 궤도를 이탈한 것이라 스스로 다독이며 다시금 되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게 한다.

 흘러 버린 시간은 추억만 거둬 간 것이 아니었다. 말랑말랑했던 서글픔과 뜨거웠던 마음 같은 것들, 하루도 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리움들. 비 온 뒤의 맑게 핸 하늘 같은 것들, 딱딱하게 굳은 아픔 같은 것들, 달리지 않고는 식히지 못할 열정 같은 것들, 눈곱 낀 개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 같은 것들도 거둬갔다. –P61

 개를 산책시키는 동안 발생한 사고로 인해 그는 또 그 자리를 잃어버린다. 모든 것이 돈으로 일사천리 해결되는 장면에서 인간으로서의 박탈감이 느껴졌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만 매겨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마치 책정되어 있는 가격표에 의해서만 대우 받게 되는 현실에 불평하면서도 그 제도권 안에 있을 때 안도감을 느끼는 묘한 현상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을 때 왠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졌다. 지금 당장의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불판을 닦고 대행업체에서 근근이 생활을 꾸려가게 된다.

 그러던 그에게 다시금 한 줄기 빛을 가져다 준 것이 라마를 산책시키는 일이다. 개를 산책시키는데 최소 대학을 졸업한 원하는 주인들을 아니꼽게 보던 그였지만 궁여지책 속에 동물병원장의 끈질긴 요청으로 이 일을 맡게 된다. 강남의 왠만한 집 값을 호가하는 라마를 맡으면서 그는 자신이 처해져 있는 모습을 다시금 되돌아 보며 비관하기도 하지만 그 대가를 받는 순간 그는 쾌재를 부르며 다시 한번 인생 역전을 꿈꾸게 된다. 이대로라면 그는 재개는 물론 이전보다 훨씬 나은 삶을 보장 받은 셈이었다. 이런 계산이 끝나자 자신이 바닥으로 떨어진 순간 그와 함께 했던 이들을 거리를 두게 된다. 이전에는 나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던 삼손과 미향은 이제는 더 이상 나와 어울리지 않는, 그저 내가 잠시 알던 사람으로만 치부하는 장면에선 은주와 같은 모습이 보였다. 은주를 그리워하며 품었던 미향도,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위한 그에게 휴식처와 같던 삼손도 이제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어느새 힘이 잔뜩 들어간 그를 보면서 풍족한 물질 속에 물들어 가며 변해가는 인간의 본성이 참으로 간사하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노숙자로 전락하여 하루 몸 뉘일 곳을 오매불망 찾아 헤매던 그가 이제는 명품 슈트를 걸치고 우아하게 라마와 산책하며 뭍 여성들의 시선을 즐기는 그는 원래 그러한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누구나 힘을 가지면 이렇게 변하게 마련일까.

 우린 우주의 존재거든. 우리가 죽어 재로 변하지만 우리의 질량은 우주 어딘가에서 다른 뭔가로 다시 나타난다고 생각해. 화장을 해도 마찬가지야. 습기나 다른 원소들로 우리가 생전에 가지고 있던 질량이 그대로 다른 곳에서, 아님 다른 우주에서 태어난다고 생각하거든. 그렇게 다시 태어나는 과정 중에 영혼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우리가 평소 살면서 가졌던 우리의 생각이나 정신, 각오, 희망, , 슬픔, 절망 그런 걸 질량으로 잴 수는 없잖아. 하지만 난 그 개념들도 난 질량이 있다고 봐. 그 개념들이 영혼으로 환치가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어느 날 그는 미향과 몽몽 원장의 오묘한 관계 속에 일그러진 욕망의 현장에서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모래알보다 가볍다 느낀 가족의 존재가 사라지고 나서 그리고 그 이후 들려오는 라마의 실종으로 그의 한줄기 희망은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한 권의 소설 속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마냥 웃어 넘기기엔 현실이 고스란히 들어있어 그런지 보고 나서 되려 쌉쌀함이 느껴지는 책이다. 그래, 쓰디 쓴 인생이라 해도 그 안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참 많다. 달아나고 싶지만 그 굴레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라 어느새 공감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