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하라 - 세계를 뒤흔드는 용기의 외침
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유영훈(류영훈) 옮김, 우석훈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두 달 전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월가의 시위운동에 대한 보도를 접하게 되었다. 자본주의를 맹신하고 그 틀 안에서 꽃을 핀 미국이란 경제 안에서 그것도 금융의 본가인 월스트리트에서 시위운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가 참 아이러니 하면서도 그 속내가 궁금했는데 점령하라란 책을 통해서 그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책의 제목과 대략적인 목차를 보면서 월가 시위 운동의 당위성에 대해서만 재차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란 의문이 들었는데, 실제 책 안에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 의해서 시위 운동 이외의 문제점이나 그들의 생각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어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광범위한 문제들을 하나로 엮어 놓은 현 시대의 보고서 같은 느낌이다.

 자본주의 하에 빈부격차는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문제이긴 하나 성장을 위해서는 두 눈 질끈 감고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라 생각했었다. 부득이한 희생으로 받아들였기에 간과하고 있었던 문제들을 이제서야 비로소 끄집어 낸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한 이래 미국의 실업난 꾸준히 제기되는 문제 중 하나로 등록금 인상으로 인해 빚만 늘어난 대학생들과 실직 혹은 구직 중에 길거리고 나앉은 사람들, 또 그 이외의 각기 다른 사유들을 가지고 이 자리에 함께 있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동일하다.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막기 위해 혈세를 동원하여 금융가를 살려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정작 그들은 돈 잔치에 빠져있었으며 그 사이 99%의 서민들의 생계는 피폐해지고 위협받고 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한 그들은 같은 분노로, 같은 마음으로, 같은 희망으로 하나로 만들고 있었다.

 1%를 위한 시위 운동으로 모였지만 비단 그 문제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점령 공간에서 함께하는 사회 소수자들도 안전하고 공평한 장소가 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장면들은 그들이 가진 또 다른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통역을 요청하는 한 사람을 위해서 통역사를 대동하여 그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고 이성애자, 동성애자를 구분하기 전에 그들 스스로가 불려지기 원하는지를 확인하고 불러야 한다, 점령 공간 안에서 드럼 연주를 하는 드럼 서클이 때론 소음으로 전락해 버릴지라도 그들 역시 점령운동에 동참하고 있음에 합의를 이끌어 내는 그들을 보면서 대다수의 의견 안에 존재하는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거나 으레 통합시키려 하기 보단 하나하나의 뜻을 모으려 하는 태도는 매우 존경스러웠다.

 우리가 사는 게 이렇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자유를 갖고 잇죠. 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빨간 잉크, 바로 우리의 비자유를 또렷이 말할 언어입니다. 우리가 자유를 말하도록 배운 방법은, 테러와의 전쟁, 뭐 그런거겠죠, 자유를 날조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여기에서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겁니다. 여러분은 모두에게 빨간 잉크를 주고 있는 겁니다 -슬레보예 지젝

슬레보예 지젝은 이 현장이 단순한 축제로 치부하여 이 현장에 있었던 자기 자신에 대해 자랑스러워 하며 차후에 그래, 그때 멋있었지라는 생각으로 남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현장에 함께 하는 것 만큼이나 왜 이곳에 우리가 모였는지를 잊지 않고 계속해서 그 뜻을 굽히지 않는 신념이 중요함을 나타내며 많은 사공들로 인해 배가 산으로 가는 것을 걱정하며 남긴 그는 이 운동에 대한 애착을 느낄 수 있었다.

 시위대 진압을 위한 경찰의 공권력 남용에 관한 행태가 SNS를 통해 전달되면서 현 사건뿐만 아니라 깨진 유리창 이론을 기반으로 유색인종들에 차별적 공권력 행사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서도 오랜 동안 토론이 이어진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노숙자에 대해 그들이 토론하는 장면으로 대게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시위가 발생하게 됨에 따라 원래 그 장소를 점령하고 있던 노숙자들이 시위대에겐 공공의 적이 되곤 한다. 공짜 음식과 공짜 담배를 얻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1%에 대한 시위를 펼치는 곳이므로 노숙자를 쫓아내야 한다는 의견과 노숙자로 보이는 자들에게만 왜 이곳에 있는 것인지를 묻고 그에게 시위에 참여를 요구하는 것 역시 하나의 월권이라는 의견들이 대립하면서 오랜 토론으로 합의를 도출하게 되는 장면에서 그들의 진득한 토론의식이 부러웠다.

 이익을 사람 위에 두고, 사리사욕을 정의 위에 두고, 억압을 평등 위에 두는 기업들이 우리 정부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1%의 기득권층을 향한 99%의 외침이 그들에게 제대로 전달 된 것인지, 그저 역사 속 사건 하나로 잊혀 질지는 차후에 밝혀지겠지만 우리 역시 언젠가 점령해야만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기에 이미 그 어려움을 겪어 본 그들의 고충을 한 번쯤 읽어보고 우리에겐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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