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성생활 지침서 (양장)
자미에 왁스먼 & 에밀리 모스 지음, 김광우 옮김, 벤저민 바헨예 그림 / 시그마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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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성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인간 대 인간의 올바른 가치관을 기반으로 하는 성 지식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물론 예전부터 성이란 드러내놓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금기된 영역이긴 하지만 부자연스러운 억압과 금지가 더 이상하고 왜곡된 성 문화를 발생시켰다는 점에서 이제는 과감하게, 솔직하고 개방된 성 문화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마음과 몸의 문제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마음은 고상하면서 몸은 쾌락을 좇는다? 그것은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자신을 속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성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서로 간의 배려와 신뢰일 것이다. 일방적인 만족, 양보로는 어느 기간 유지할 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서로의 관계를 깨는 위험한 방식이 될 수 있다. 관계가 깨지지는 않더라도 한쪽이 계속 참다보면 언젠가는 성생활에 대한 행복과 기쁨은 점점 괴로움으로, 무감각으로 변질될지도 모를 일이다. 서로의 성 취향과 환상에 대해 솔직하게 터놓고 대화하면서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닌 진정한 하나가 되는 성행위를 지향해야 한다. 서로를 살리는 지속적인 기쁨과 행복, 만족을 위한 성생활의 지평을 개발, 확장하는 것은 많은 공부와 노력이 요구된다. 그것은 정체된 사랑이 아닌, 활기와 생동감이 넘치는 무한한 사랑의 실현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림으로 보는 성생활 지침서'는 구체적으로 몸의 영역에서 어떻게 하면 보다 만족할 수 있고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성생활이 가능한지 참고가 될 만한 방법과 기술을 사실적인 그림을 통해 가르쳐주고 있다. 그림이 사실적이긴 해도 그렇게 야하다거나 음란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부부나 연인 간에 한번쯤 시도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웃어넘길 수 있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섹스는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움과 기쁨, 행복, 황홀함, 신비로움이 공존하는 하나의 예술과도 같다. 육체적 흥분, 낮은 차원의 정신적 경련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고귀한 것이다. 더이상 성과 사랑이 퇴폐적으로 후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루하루가 더 밝고 즐거운, 현실에 충실하면서 보다 나은 미래를 지향하는 아름다운 창조의 과정이 되길, 사람들이 점점 그렇게 만들어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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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나구 - 죽은 자와 산 자의 고리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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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사람과 단 한 번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 나는 과연 누구를 만날 것인가. 아직까지 내 인생에서 죽음은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일, 교회 다닐 때 고령의 장로님이나 집사님들이 돌아가실 때 정도... 그리고 많이 친하진 않았지만 만날 때마다 든든한 느낌을 주었던 교회 동생이 채 20대도 맞지 못한 채 사고로 죽은 일... 돌이켜 보니 내 삶의 주변에 이렇게 많은 죽음이 있었나 놀라게 된다. 최근 가장 놀랐으면서도 안타까웠던 죽음은 이제 나는 종교생활에 큰 활력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나와 다르게 믿음 이후 선교사의 길을 걸으며 자신의 인생을 기독교 신앙에 바치기로 했던 한 누나의 죽음이었다. 원래 지병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일이 있기 전까지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터라 나는 미처 슬픔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장례식장에 가서 누나 얼굴 한 번 보고,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 후 같이 온 사람들과 자리에 앉아 이게 무슨 일인가 서로들 혼란스러워하며 고인에 대해 얘기하고 각자의 안부를 물으며 돌아온 후,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친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나랑 많이 의견 충돌이 많기도 했던 누나라... 그녀의 죽음은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던 것들과는 느낌이 남달랐다. 

   소설 '츠나구'에는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자와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을 지닌 츠나구, 즉 '사자'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산 사람에게도 죽은 사람에게도 그 기회는 단 한 번으로 동등하다. 단 죽은 사람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그래서 살아 있는 사람의 선택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이 책에는 네 가지 의뢰의 내용과 대대로 내려오는 능력인 사자의 역할을 이어받게 될 아유미라는 소년의 숨겨진 과거사에 대한 한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자신에게 삶의 희망을 주었던 아이돌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에 혼란에 빠진 한 여인의 의뢰, 종가의 장남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지고 살아왔던 아들이 내내 품어왔던 의문을 풀기위해 어머니를 만나려는 의뢰, 친구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빠진 한 소녀가 그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한 의뢰, 갑자기 사라져버린 연인을 7년 간이나 기다리며 힘들게 지내온 남자의 의뢰 등이다. 그리고 이 의뢰들을 할머니로부터 츠나구 역할을 물려받기 위해 일종의 수습과정에 있는 아유미가 담당하게 된다. 아직 정식으로 사자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죽은 자를 불러내어 교섭한다거나 하는 일을 하지는 않지만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일을 하면서 아유미는 삶과 죽음, 살아 있는 자가 죽은 자를 만나는 일에 대해 깊은 생각과 고민에 빠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해봤다. 나에게 과연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소설처럼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단 한 번 온다면 누구를 만날 것인가 하는. 나에게 큰 행복을 줬던 사람? 큰 오해를 미처 풀지도 못하고 죽은 사람? 가족? 친구? 인생의 스승? 글쎄... 생각해볼수록 지금의 나에게 이런 질문은 적절한 것 같지 않다. 나에게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것은 지금 주어진 이 삶과 이 삶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행동하는 것이다. 살아계실 때 잘해드리는 것이 진짜 효도라는 말처럼 아직 많은 이별을 경험하지 않은 행운을 가진 나이기에 이 기회를 헛되지 보내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 '츠나구'는 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했던 일에 대해 소중하고 진지한 고민을 하게 해주어서, 지금 이 삶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어서 고마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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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갓!
시릴 마사로토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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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예전에 '신과 나눈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을 잠깐 보다가 개인적으로 왠지 사이비 같은 느낌이 들어 얼마 읽지 못하고 덮어버렸던 기억이 났다. 인생이 최악으로 추락하고 있을 때 내면으로부터 시작된 신과의 대화 내용이 그 당시 교회를 무식하게 열심히 다니고 있던 내 입장에서는 그다지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 사람 나름의 깨달음이 신과의 대화라는 형태로 구현되었다고 볼 수 있었던 것이지만 그때의 나는 그만큼 좁은 세계관 속에 갇혀 살고 있었다. 

   시릴 마사로토라는 작가가 '오 마이 갓'에서 묘사한 신의 모습은 굉장히 신선하다. 그다지 특별하다고 볼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의 일생에 개입하여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는가 하면, 고약하기 짝이 없는 장난을 치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정의하고자 하는 신의 모습이 아니라 옆집 아저씨나 친한 삼촌처럼 친밀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세계와 인류의 고통에 어찌 그리 무심할 수 있느냐는 항의에 자신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픔과 괴로움을 그대로 자신이 온전히 느끼고 있는 상태를 낱낱이 밝히면서 사람의 품에 안겨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하느님'이란 호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기독교나 천주교에 국한된 의미의 하느님이 아닌, 사람들의 행복한 마음이나 사랑에 의해 그 존재가 유지되는, 신보다는 그 신을 있게 하는 인간의 의미를 더 생각하게 하는 개념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쿨한 것이 신의 모습이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초월적인 존재에게 품고 있는 애증의 양면적인 감정은 불필요한 것이 될 것이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에 찾아온 친구 같은 신, 그리고 삶의 모든 것이 되어버릴 한 여인과의 만남과 결혼 -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그러다가 찾아온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고통, 방황. 절망으로부터의 회복. 무엇이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인지에 대해 좌충우돌하다 죽음에 이르러서 얻게 되는 진정한 사랑과 행복의 의미. '인류의 삶은 계속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신의 질문에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하게 될 것인가. '오 마이 갓'은 지나간 과거나 다가올 미래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삶의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금 이 순간 나의 삶에 함께하는 소중한 사람들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기분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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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역사
데이비드 존스턴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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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드 교수가 쓴 한 권의 책으로 인해 작년 한 해, 그리고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열기를 띠고 있는 '정의'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아무리 이기적이고 자신의 살 길을 우선시한다고는 하지만 이상적인 세상, 사회에 대한 염원 같은 것은 본능처럼 누구나 한 번 쯤 품어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태초부터 부여받은 본능인지 필요에 의해 대대로 학습되어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된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올바름'에 대한 고민은 인류 역사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 올바름,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이 그 시대의 상황이나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정의되어 왔다는 것이다. 잉영생산물의 발생과 축적이 가능해지고, 지배-피지배 계급이 생겨나면서 초기의 정의는 온전히 지배자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권리, 정의 등에 대한 의식이 깨어나면서 상대적인 정의관, 절대적, 목적론적 정의관 등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
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의라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하나의 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역사를 돌아봤을 때나 문화가 상이한 곳의 사례를 봤을 때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그런 기준 같은 것은 큰 의미가 없어보인다. 정의의 역사라는 것은 엄밀히 말해 정의라는 가치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다툼의 역사다. 

   오늘날의 정의의 문제는 주로 경제적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왕이 지배하는 사회든, 민주정치가 발달된 사회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풍요롭고 다툼이 적다면 그것이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지배계급이 물질적, 정신적으로 타락하면 어느 사회나 혼란과 분쟁이 생기게 마련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도 거대자본의 장난으로 인한 정치적, 경제적 불균형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권리를 주어 거대한 규모의 집단 지도 체제를 구축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어느 조직이나 시간이 지나면 중심 인물이 나오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기존의 망하는 역사를 되풀이하게 되니까. 사실 이런저런 복잡한 얘기는 사실 다 곁가지에 불과하다. 정의, 평등 운운하는 것은 누군가는 더 잘 사는 것 같고 나는 그에 비해 못하다는 심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결국 정의의 문제는 존재의 영역과 소유의 영역을 확실하게 구분하면서 인간성을 지키는 동시에 돈 문제도 중요하게 여기는 이중적인 가치구조로 인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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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소설가의 고백 -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읽고 쓰는 즐거움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혜원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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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자유롭게 살다 갔거나 살고 있는 사람을 매우 동경한다. 특히 모험을 비롯한 미지의 세계에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건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감동과 아쉬움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들이 육체의 영역에 좀 더 비중을 둔 모험가이자 탐험가들이라면, 이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어쩌면 더 깊고 넓은 영역을 여행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치밀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는 이들이다. 자신이 만든 세계 밖에서 전지전능한 신처럼 군림하는가하면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 만든 자신조차 미처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황홀함, 스릴, 격정을 느낄 수도 있다. 그들의 정신과 영혼은 물리적 제약을 받지 않고 우주 저 끝에서 끝까지 가로지르는가 하면, 또 경계를 넘을 수도 있다. 끊임없이 우주를 확장해나가는 것은 그들만의 특권인지도 모르겠다.

   움베르토 에코는 바로 그런 환상적인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 중 가장 유명한 학자이자 작가인 사람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과거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면, 오늘날은 단연 움베르토 에코를 꼽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작가의 육신의 나이는 일흔일곱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지만, 스스로 농담처럼 그러나 진중하게 자신의 작가 나이는 서른 살도 채 되지 않은 전도유망한, 훨씬 더 많은 책을 써내려갈 사람이라고 말한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젊고 유머 넘치는 인생을 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삶의 즐거움과 열정, 희망은 결코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움베르토 에코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닌가 하는 못난 생각을 해보게도 된다. 

   이 책은 작가로서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창작이란 무엇이며, 자신의 창작 과정, 작품 속 캐릭터의 의미와 역할, 텍스트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목록에 관해 실용적 목록과 미학적 목록으로 나누어 문학의 영역에서 목록이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다룬 부분은 특히 흥미로웠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매니아적인 독서 취향을 가진 독자가 아닌 입장에서 이 책에 담긴 내용을 충분히 맛보기엔 역부족이었다. 다만 이름만 익숙했던 그의 문학 세계에 아쉬우나마 한 발을 내딛을 수 있게 된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이제 또 하나의 오르고 싶은 멋진 산이 생겨 기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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