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엠 바운즈 기도전집 - 『기도의 능력』 포함 8권의 기도서 완역 합본
E. M. 바운즈 지음, 김원주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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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말하는 기도의 개념이 타 종교와 다른 점은 기도하는 사람 자신의 소원보다 기도하는 대상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데 그 본질과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도 내용의 성취는 하나님의 기쁨이자 나의 기쁨이 되는 결과로 이끈다. 그러나 이러한 본래 의도와 목적이 정말 그런 것이었나 되물을 만큼 기독교에서 기도의 의미는 많이 희석되어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해 왜곡되고 변질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경제성장과 정치권력이 밀접하게 연결된 형태로 발전한 장로교 중심의 기독교의 경우 기도의 의미와 내용이 기복신앙 일색, 물질적 만족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인식이 기형적으로 심화된 곳이 있을까 싶다. 물론 성실한 종교생활을 통해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존재 의의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이 무엇인가를 바로 아는 데 있다. 그것은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것을 초월하는 비물질적이고 영속적인 의미의 복인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기도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범적인 기도를 가르쳐주시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주기도문이다. 주기도문에는 먼저 하나님의 존재를 높이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야 우리의 필요, 즉 영혼과 육신의 양식을 구하도록 가르치며, 다음으로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가장 최선의 형태로 서로를 위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기도와 성취, 역사의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리는 것으로 맺는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한 번 간단하게 기도의 방법을 정리해주신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실 것이다.’ 비록 기도의 내용이 사람마다 각양각색일지라도 그 목적은 하나인 것이다.

 

이 엠 바운즈는 감리교 목사이자 작가이며 사상가로 소개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앞서 말했듯이 장로교가 주를 이루는 기독교 문화이기 때문에 감리교의 기독교 사상은 약간 색다른 측면이 있다고 여겨질 수 있다. 교리적으로 자유로운 색채는 비기독교인들에게 조금은 더 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경향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기독교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핵심 중 하나인 기도에 대한 이 엠 바운즈의 통찰과 설명, 권면은 교파를 초월하여 바른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역할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기독교 신앙생활의 핵심을 보통 말씀(성경)과 기도, 찬양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거기에 전도와 구제 등의 사회적 참여가 따라온다. 이들 중 기도가 더 특별한 것은 그것이 모든 일의 원인과 과정과 결과에 주권을 행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유일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재료와 노력과 여건이 갖추어져 있다 해도 그 완성은 기도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특히 기적을 행하시면서 잘 알려주셨다. ‘기도가 아니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다

 

이 엠 바운즈의 기도전집은 이렇게 색다르고 독특한 의미를 지니는 기독교의 기도란 무엇인지, 알기 쉬운 명쾌한 설명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역사적 인물들의 개별 사례를 통해 기도 행위가 단순한 자기만족과 자기안위적 의식이 아니라 기독교인을 가장 기독교인답게 하는 특별한 신의 선물임을 넓고 깊게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의 방대한 분량이 부담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한번 빠져보면 두께가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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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용기 - 대담하게 일하고, 냉정하게 대화하고, 매 순간 진심을 다하여
브레네 브라운 지음, 강주헌 옮김 / 갤리온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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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조직이 흥하고 어떤 조직이 망하는가? 한 모임이나 집단의 리더 혹은 임원의 역할을 맡아본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조직이 잘되거나 혹은 이도저도 아니거나 아니면 몰락의 길을 가는 과정을 겪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기에 이 책을 읽어보기로 선택한 것이며, 이 책의 독자들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관련된 문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리라.

 

나는 교회에서 중고등부의 회장을 맡은 경험이 있다. 내가 처음 회장으로 뽑힐 때 인원은 10명이 훌쩍 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확하지 않다. 그런데 몇 명까지 줄어들었는지는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를 포함한 4명이었다. 당시 중고등부는 오후 예배의 성가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인원이 설 수 밖에 없었고, 나는 그때의 장면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너무나도 창피하고 힘들었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회장을 맡았을 때는 그냥 정도대로 가면 된다고 믿었고, 조직이라는 것이 그토록 관계적 측면에서 세심한 돌봄이 필요한 것인 줄 생각조차 못했었다. 모든 사람과 깊이 있고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도 부족했고, 내가 꼭 그런 걸 해야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맡은 회장이었으니 그 조직의 미래는 뻔한 것이었다. 하나의 모임을 최소한으로 만들었던 그때의 참혹했던 경험은 이후에 내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 되는 상황을 항상 피하게 만들었다.

 

지금에서야 그때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지만, 여전히 나는 모임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데 미숙하고, 또 까다롭고 번거롭게 여긴다. 그만큼 어떤 조직의 리더라는 것은 무거운 책임감과 실력, 겸손한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미 성품의 측면에서 리더가 될 사람과 팔로워로 만족해야 될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번에 출간된 브레네 브라운의 리더의 용기라는 책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흔들리는 조직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리더의 대담한 용기가 필요하며 이 용기는 학습될 수 있고 측정될 수 있는 능력임을 설파하고 있다. 이 책은 문제가 생긴 조직의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리더가 스스로 먼저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그렇게 솔직해진 스스로의 모습을 바탕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면서, 생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그 가치를 실현하며, 용기를 회복하여 조직을 다시 일으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리더, 다시 말해 한 사람이 조직 혹은 무언가를 재생시키기 위해 불러내야 될 용기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문제 상황에서 직면했을 때 두려움과 거북함, 혼란과 공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고백하고 함께 고민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이 홀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인간 존재의 사회성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정교한 이론과 논리적 전개 안에서도 결코 배제되어서는 안되는 인간의 감정, 정서의 문제를 중요 포인트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방법론을 바탕으로 조직 구성원 간에 다시 세워진 신뢰 관계를 통해서 조직은 회복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조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와 그 해결책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한 개인이 하나의 시스템이며, 자아가 그 총사령관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가정해보면,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법과 서로 모순되는 듯 보이는 내면의 갈등들이 사실 긍정적인 힘으로 연결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흐름임을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진정한 리더십이란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배려, 친절과 단호함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나 자신에 대해서든, 내가 속한 모임에 있어서든 - 이 책의 내용을 적용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단계가 이어져야만 비로소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을 언젠가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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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하빌리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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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번역한 양윤옥 선생님의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집 교통경찰의 밤1989년부터 1991년 사이에 나온 작품들을 한 권으로 묶어 출간된 책이라고 한다. 즉 이 작품은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가는 길목, 다시 말해 우리에게는 일본 경제가 극과 극을 달렸던 시기로 알려진 거품 경기의 시대의 마지막 정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양윤옥 선생님은 번역자의 관점에서 물질 문명과 정신 문화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생긴 균열을 히가시노 게이고 씨가 어떻게 작가적 혈기로 풀어냈는가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 글의 서두에서 이 작품의 시대 배경을 언급한 이유는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연령층, 즉 세대에 따라 그 재미가 꽤 차이가 날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어쩌면 많이 젊거나 어린 독자층에게는 작품의 배경에서 느낄 수 있는 낯섦 때문에 재미를 놓칠지도 모른다.

 

무슨 말이냐 하면, 히가시노 게이고 씨가 이 작품집의 작품들을 쓸 당시에는, 지금 시대에는 매우 익숙한 자동차 블랙박스는 물론이고 CCTV조차 대중화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그래서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지금 시대에서는 자연스럽게 활용되어야 할 단서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이 어색한 가운데서 오는 재미의 반감 같읕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장비들이 없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목격담과 증언, 수사하는 인물의 경험과 직감, 추리 등 아날로그적 사건 해결 접근 방식의 의존도가 요즘 나오는 작품들보다는 훨씬 더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불과 30년 정도의 차이지만 과학수사라는 차원에서만 봐도 이렇게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이다. 길거리 같은 바깥 장소에서 당장 어딘가로 연락을 해야 하는데, 스마트폰이 아니라 공중전화로 가서 통화를 하는 장면만 해도 이채롭게 느낄 독자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8,90년대를 지내온 독자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반의 사회가 되기 전과, 디지털 기반의 플랫폼과 IT 기기들 없이는 살기가 많이 번거로운 그 이후의 세상을 다 겪어본 특별한 계층이다. 이들이 보는 교통경찰의 밤과 디지털 중심의 세상만 겪어본 세대가 읽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교통경찰의 밤이 같은 재미로 읽힐 리가 없다. 오히려 시대가 급변하기 전과 후를 다 겪어본 세대에게 과거와 현재의 배경적 요소를 비교해가며 읽는 재미가 특별히 더 보장된 작품집이라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고전이라 불리는 과거 시대의 작품들은 예외다. 시대의 변화를 함께 겪고 있는 작가의 작품이기에 이런 감상이 나오는 것이다.

 

초기 작품도 그렇고 최근에 나온 작품들에서도 느껴지는 인상은 이야기의 결말로 이어지는 부분이 대체로 싱겁다는 것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앞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요소들이 나타나 갑자기 다 스스슥! 해결되는 흐름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의 모든 작품을 살펴보지 않아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본 작품들에서는 그런 인상을 계속 받았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1985년 데뷔한 이래 33년 동안 매년 꾸준히 두 권에서 네 권 정도의 작품을 발표해왔다고 한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현재까지 87. 작품의 질 문제는 차치하고, 이렇게 롱런할 수 있는 작가의 성실함과 직업정신이 존경스럽다. 이런 부분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작가로서 존재하기 위해 젊은 시절부터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생각나게 한다.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꾸준함이라는 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에 읽게 될 작품을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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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플라톤의 대화편 현대지성 클래식 28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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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막론하고 소크라테스의 존재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세계 철학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그리스 아테네 철학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며, 세계 4대 성인으로 추앙되고 있고, 최소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언으로 그 존재를 희미하게라도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각인시킨 대단한 인물이다.

 

그런데 이런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나 그의 일화 등을 여러 곳에서 다루고 전해듣기는 했어도 정작 그의 기록들을 심도 있게 읽고 대화를 나눠본 경우는 의외로 찾아보기 힘들다. 필자도 그런 경우에 속해 있던 터라 이제야 그의 흔적들을 유심히 읽어볼 수 있게 되어 부끄러우면서도 즐거웠다.

 

소크라테스는 말년에 그를 질투하는 자들에 의해 불경죄로 고발당하고 결국 사형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그 불경죄의 내용이 넌센스 그 자체다. 그가 신을 부정하고 잘못된 가르침으로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 경위를 자세히 살펴보면 소크라테스를 시기하는 자들의 모함과, 그들이 고발한 내용의 사실관계를 확인해보지도 않고 여론에 떠밀려 동조한 대중들의 무지가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으로 보인다.

 

그가 평생에 한 일은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파하는 것이었다. 대화를 통해 사람들의 무지를 일깨우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사람들을 좀 더 훌륭하고 선량하게 만드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산 사람이었다. 돈과 권력, 지위에서 자유로웠고, 그 때문에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부족한 가장이었으나, 철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따뜻함으로 무장된 그의 가르침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였고 따르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다. 철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진리 탐구는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을 사용한다. 즉 생각하고 의심하며, 의문을 가지고 고민하며 연구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적 자산들을 독점하지 않고 나누었는데, 그것은 바로 산파술로 알려진 소크라테스의 독특한 대화 방식을 통해서였다. 대화는 질문과 대답으로 구성된 행위이다. 이 상호작용을 통해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뛰어난 철학적 통찰을 전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철저한 이성과 논리 말고도 소크라테스 철학에는 큰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신에 대한 믿음이다. 책 곳곳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하는 일이 신에게서 받은 사명이며 축복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의 근저에는 모든 것이 신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하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많은 사람들의 모함과 비난, 부당한 판결 가운데서도 초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고, 죽음조차도 영원한 안식 혹은 먼저 간 위대한 현자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신 의식은 그리스 신화적 색채보다는 오히려 기독교 사상적인 유일신을 밑바탕에 둔 느낌마저 든다. 이런 그의 태도는 특별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신에 대해 깊은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는 잘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하면 대부분 무지에 대한 자아의 인식과 그 반응에 대해서만 떠올리기 마련인데, 알고 보니 그만큼 신앙적인 역사적 위인도 없었던 것 같다.

 

어찌보면 그의 죽음은 그가 자초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들에게 진실만을 말했기 때문이다. 신적 사명감을 가지고 진실만을 위해 뛰었던 그의 열정이 사람들의 화를 돋군 것이다. 그런 그의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들보다 미워하고 증오했던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거기에 힘을 보태준 것은 깊이 생각하고 사실 확인하기를 거부한 대중의 압력이었다.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분명히 했고,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 특유의 대화법을 통해 그들의 무지를 여지없이 입증해주었던 소크라테스. 실제로 그렇지 않으면서 지혜롭거나 쓸모있거나 대단한 사람인 척 하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했고 비판했던 소크라테스.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진리와 기준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죽음도 기꺼이 받아들였던 그의 올곧은 모습은 칭송할 만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에 대한 한계를 절감케 하는 것이기도 했다.

 

지금, 소크라테스가 살아돌아와 그때와 동일하게 행동한다면, 과연 누가 즐거워할까? 과거의 인물이기 때문에 영혼의 스승으로 삼거나 떠받들거나 위인으로 여기거나 인문학 상품으로 부활한 것이지, 바로 우리 곁에서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이 진실을, 진리를 조용하지만 분명히 외치고 있다면,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불편한 존재로 우리를 압박할 것이고 결국 우리는 또다시 그를 죽음으로 내몰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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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수업 - 수천 년의 지혜가 담긴 위대한 가르침
마빈 토케이어 지음, 이재연 옮김 / 탐나는책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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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의 특징은 내용과 그 내용 해석의 유연성과 확장성에 있다. 탈무드는 그 원류를 구약성경, 특히 모세오경에 두고 있는데, 기존의 성경이 신의 말씀, 즉 신적인 권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더하거나 뺄 수 없다는 사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유대인들의 탈무드는 매우 이채로운 성격을 갖는 것이 된다. 그래서 탈무드는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독립적인 유대인들의 문화유산으로 볼 필요가 있다. 성경에 대한 교훈과 일차적인 해석 등이 존재하고, 그 기본적인 내용에 대한 끝없는 토론과 논쟁, 철학과 일상에의 적용 등이 지금의 탈무드를 형성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계속해서 새로운 해석과 적용, 내용의 확장을 이뤄내는 것으로 보인다.

 

책 속에는 탈무드의 기원과 함께 역사적으로 많은 시련을 겪어온 것을 언급하고 있다. 13세기에는 기독교도에 의하여 몰수되고 불태워진 것, 16세기에는 로마에서 모든 탈무드가 압수되어 불태워지기도 했다고 한다. 16세기에는 가톨릭 교회가 검열을 통해 탈무드의 내용이 부분적으로 삭제되는 일을 겪기도 했다. 책을 읽다 보면 어리둥절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어 내용이 중간에 끊긴 것 같거나, 왜 이게 탈무드에서 다뤄지고 있을까 싶은 내용들이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탈무드를 읽을 때 중간에 문맥이 끊어지거나 내용이 어색해지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아마 그런 이유에서 나도 기묘한 감상을 가졌던 것 같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숭배하는 가장 최대의 행위가 공부하는 행위에 있다고 믿는다. 그 자체를 종교적인 의식 내지 행위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유대인들의 자세가 오늘날 20, 12,000페이지에 달하는 지혜의 책을 남겼으며, 이는 유대 사회를 하나로 묶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방대한 내용을 정리하고 편집한 저자 마빈 토케이어는 책을 통해 탈무드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읽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고 지혜로 발전하려면 단순히 읽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머리를 써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토론을 통해 진정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탈무드의 또 하나의 특징이 발견된다. 바로 사람과 책이 함께 성장해간다는 것이다. 유대사회는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그들의 민족성과 유대감, 애국심, 우수성을 발전시켜 온 것이다.

 

비록 유대인은 아니지만, 유대인들이 어떻게 오늘날 세계에서 남들과 다른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또 그런 그들의 장점을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 싶은 독자에게, 이번에 탐나는책출판사에서 출간된 유대인 수업은 첫걸음을 떼는 데 적절한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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