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하빌리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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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번역한 양윤옥 선생님의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집 교통경찰의 밤1989년부터 1991년 사이에 나온 작품들을 한 권으로 묶어 출간된 책이라고 한다. 즉 이 작품은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가는 길목, 다시 말해 우리에게는 일본 경제가 극과 극을 달렸던 시기로 알려진 거품 경기의 시대의 마지막 정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양윤옥 선생님은 번역자의 관점에서 물질 문명과 정신 문화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생긴 균열을 히가시노 게이고 씨가 어떻게 작가적 혈기로 풀어냈는가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 글의 서두에서 이 작품의 시대 배경을 언급한 이유는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연령층, 즉 세대에 따라 그 재미가 꽤 차이가 날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어쩌면 많이 젊거나 어린 독자층에게는 작품의 배경에서 느낄 수 있는 낯섦 때문에 재미를 놓칠지도 모른다.

 

무슨 말이냐 하면, 히가시노 게이고 씨가 이 작품집의 작품들을 쓸 당시에는, 지금 시대에는 매우 익숙한 자동차 블랙박스는 물론이고 CCTV조차 대중화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그래서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지금 시대에서는 자연스럽게 활용되어야 할 단서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이 어색한 가운데서 오는 재미의 반감 같읕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장비들이 없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목격담과 증언, 수사하는 인물의 경험과 직감, 추리 등 아날로그적 사건 해결 접근 방식의 의존도가 요즘 나오는 작품들보다는 훨씬 더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불과 30년 정도의 차이지만 과학수사라는 차원에서만 봐도 이렇게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이다. 길거리 같은 바깥 장소에서 당장 어딘가로 연락을 해야 하는데, 스마트폰이 아니라 공중전화로 가서 통화를 하는 장면만 해도 이채롭게 느낄 독자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8,90년대를 지내온 독자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반의 사회가 되기 전과, 디지털 기반의 플랫폼과 IT 기기들 없이는 살기가 많이 번거로운 그 이후의 세상을 다 겪어본 특별한 계층이다. 이들이 보는 교통경찰의 밤과 디지털 중심의 세상만 겪어본 세대가 읽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교통경찰의 밤이 같은 재미로 읽힐 리가 없다. 오히려 시대가 급변하기 전과 후를 다 겪어본 세대에게 과거와 현재의 배경적 요소를 비교해가며 읽는 재미가 특별히 더 보장된 작품집이라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고전이라 불리는 과거 시대의 작품들은 예외다. 시대의 변화를 함께 겪고 있는 작가의 작품이기에 이런 감상이 나오는 것이다.

 

초기 작품도 그렇고 최근에 나온 작품들에서도 느껴지는 인상은 이야기의 결말로 이어지는 부분이 대체로 싱겁다는 것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앞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요소들이 나타나 갑자기 다 스스슥! 해결되는 흐름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의 모든 작품을 살펴보지 않아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본 작품들에서는 그런 인상을 계속 받았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1985년 데뷔한 이래 33년 동안 매년 꾸준히 두 권에서 네 권 정도의 작품을 발표해왔다고 한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현재까지 87. 작품의 질 문제는 차치하고, 이렇게 롱런할 수 있는 작가의 성실함과 직업정신이 존경스럽다. 이런 부분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작가로서 존재하기 위해 젊은 시절부터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생각나게 한다.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꾸준함이라는 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에 읽게 될 작품을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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