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외로움의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에리히 프롬의 사상을 근거로 하여 ‘세계와 연결되는 감각’을 제시한다. 연결의 방법으로 에리히 프롬은 ‘창작’과 ‘사랑’을 추천한다. 이것은 또한 온전한 나로서 살아가는 건강한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타인이나 사물, 오락물에 의지하는 것은 일시적인 위로만 줄 뿐이며 결국 사람의 정신을 망가뜨린다. 중독 같은 비참한 결말로 이어질 수 있다. 저자는 외로움을 이겨내야 한다거나 정복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일종의 ‘반려감정’으로 규정한다. 내가 이해하기로 이런 설명은 외로움이 삶의 필수적인 구성요소 중 하나일 뿐이니 그 하나에 너무 무게를 두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비교’라는 감정은 비생산적이고 쓸모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좀처럼 지울 수 없는 감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는 비교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그중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비교’다. 이에 대해 헤겔은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나’라는 사람이 애초에 남과의 비교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와 개인, 역사 발전의 동력을 자유라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비교에서도 당연히 자유로워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자기의식이 다른 사람과의 비교와 그것을 통해 나를 성찰하는 가운데 분명해진다는 점에서 비교를 통해 자기 자신이 만들어진다고 했던 것이다.
철학적 성찰의 가장 큰 주제 중 하나가 ‘고통’일 것이다. 고통에 대한 규정은 쉽지 않다. 다만 전통적으로 통증과는 구분해왔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고통은 마음의 문제를 의미한다. 즐거움과 만족감은 익숙해지는 데 비해, 고통은 아무리 반복되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데서 그 특징을 찾기도 한다. 그리고 앞서 ‘외로움’과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감각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으로 괴로워하지만, 보편성이 있는 것만큼이나 반대로 저마다 고통의 색깔이 다 다르다. 고통의 유익은 그것을 극복했을 때 얻는 보상이다. 그래서 고통을 유익으로 해석하는 경우다 있다. 하지만 스스로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로 삼기 어려울 만큼 괴로운 상태가 된다면 그때는 차라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