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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그래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한 여자의 죽음과 관련한 참으로 수다스러운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애초에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통해 인물, 특히 거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소설이라는 사실을 숙지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말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신은 배운 것도 없고 예의도 모르고, 쓰레기나 다름없는 인간이라는 전제를 항상 깔고서 '아사미'라는 죽은 여인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묻고 다니는 와타라이라는 이 작품의 주요 인물도 자신의 말과는 다르게 날카롭고 논리정연한 말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분노와 후회 같은 것을 일으킨다. 배우지 않았거나 찌질할지는 몰라도 말발은 장난이 아닌 것이다. 죽은 사람과 관계가 있는, 말하자면 와타라이의 인터뷰이들도 말을 참 잘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노홍철보다도 수다스러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마구 쏟아내는 등장인물들의 말의 홍수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한번에 쭉 읽혀지지가 않아 힘들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아주 비참하고 괴로운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 짐작되는 한 여성이 살해된 채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죽음이나 사건의 해결에 초첨을 맞추지 않는다. 한 청년이 느닷없이 죽은 아사미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며 '아사미'에 대해 듣고 싶다고 부탁을 한다. 부탁받은 아사미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정작 그녀의 얘기나 그녀와 관련된 얘기보다는 주로 자신의 삶에 대한 원망이나 푸념, 변명만을 늘어놓을 뿐이다. 와타라이가 만난 여섯 명의 사람 중 4명은 아사미의 죽음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고 나머지 두 사람과의 만남에서는 와타라이가 왜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죽은 여자에 대해 캐묻고 다니는지 그 이유가 드러난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데 그 주변 사람들이 너무 시끄럽게 떠든다는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다. 죽은 사람을 가지고 삶과 죽음의 무게를 논한다는 것,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후회하거나 뭔가를 뼈저리게 느낀다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 것인가 허무한 기분도 든다. 이 작품의 내용을 소설이 아니라 연극무대에서 접하게 된다면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장인물도 10명 안팎이면 충분하고 글로 읽는 것보다 음성으로 전해들으면 이 이야기 자체가 갖고 있는 울림이나 다양한 메시지들이 더 잘 전달될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로는 역시 너무 수다스러울 것 같다는 이유로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튼 이 작품을 읽는 동안은, 죽는다는 표현이나 산다는 표현은 역시 가볍게 입에 담을 말들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이 서평은 출판사 '자음과모음'으로부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