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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집, 개정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책과 문장이 삶의 모든 것이었고 운명이었던 조선시대의 별난 사람을 하나 만났다. 그의 이름은 이덕무.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문인이었던 그는 읽을 수 있는 책만 있으면 무한한 행복을 누릴 줄 알았던 소탈한 사람이었다. 관직에도 재물에도 큰 욕심이 없었던 그는 어찌 보면 굉장히 무책임해 보이는 사람 같기도 했다. 가족들의 고생이 꽤나 심했을 것 같다. 원래 나고 자란 가정도 그리 풍족하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가정을 가지고 나서도 선비 특유의 삶의 자세로 일관했던 것 같다. ‘책에 미친 바보’ 로서는 아주 매력적이고 본받고 싶은 인물이긴 하지만 나머지 부분에서는 별로...
좋은 문장은 효도에서 비롯된다며 가진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효도를 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는 그의 말에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무엇인지 짐작케 한다. 자신보다 나은 사람은 존경하고 사모하며, 자신과 같은 사람은 서로 아껴주고 격려해주며, 자신만 못한 사람은 불쌍히 여겨 가르쳐준다면 이 세상은 자연히 태평해질 것이라는 그의 말에서는 세속적인 것에 물들거나 다투고 싶지 않은 이상주의적인 저자의 마음가짐을 볼 수 있다. 단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그의 입맛을 알아 친구들이 단 것이 생기면 챙겨주는 데 비해 그의 친구 박제가는 주기는커녕 빼앗아 먹는다고 원망을 하는 모습에서는 의외의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허구성과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는 점에서 소설을 싫어하는 밝히는 부분은 흥미로웠다. 어린 시절부터 사이좋게 지내던 누이가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하였을 때 그 추억과 그리움을 표현한 글에서 절로 마음이 가라앉고 애틋해지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한 평생 어떤 하나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며 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다른 어떤 욕심도 없이 자연이 주는 그대로의 혜택에 감사할 줄 알고 자기가 가진 재주를 가볍게 자랑하지 않고 겸손하면서도 자신만의 분명한 생각을 자유로이 드러내는 이덕무의 글을 보면서 오늘날에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문장의 향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고풍스러운 문장을 온전히 맛보기에 너무 둔한 내 자신이 안타까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