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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없는 경제학 - 인물.철학.열정이 만든 금융의 역사
차현진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경제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화폐, 즉 돈이 돌고 도는 금융의 문제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경제는 인간의 삶의 총체적인 살림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돈 중심의 경제관은 한쪽으로 치우친 올바르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숫자 없는 경제학’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품의 생산과 소비 중심의 현상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과 생각, 지나온 역사와 현재의 사회현상이 함께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보다 넓고 깊은 의미에서의 경제학에 대해 말하고 있다.
조물주가 땅속에 박아둔 황금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있건만,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은 자주 바뀌었다. 혼란스러운 금융의 역사 속에서 진짜 이상한 놈 또는 추한 놈은 야후, 즉 인간 자신이었던 것이다. p.42
최초로 금융업이 발생한 배경부터 국가의 살림의 향방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앙은행과 관련 금융기관들의 설립을 둘러싼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대립, 사상과 에피소드를 통해 결국 중요한 금융정책들이 어떤 객관적인 규칙이나 자연의 섭리보다는 개인의 신념이나 이해관계 등 인간 스스로의 마음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방 직후 초라하기 짝이 없었던 한국 경제가 지금은 완전하게 건강한 상태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내는 위치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아무튼 정치 빼고는 가능성이 무한한 민족이다.
화폐라는 기묘한 물건은 사유재와 공공재의 속성을 모두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략) 한 가지 속성만 강조해서는 화폐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영향을 받은 주류 경제학 이론들만 부각되고 있다. p.44
시장을 자유롭게 풀어두면 알아서 객관적인 진리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하리라는 시장자유주의와 인간이 불완전하듯 시장도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통제가 우선이라는 이 두 가지의 커다란 경제 정책은 각각 역사적으로 성공과 실패의 전력을 갖고 있다. 앞으로 세계 경제가 보다 성숙하고 안정화되기 위해서는 시장자유를 주장하는 세력과 정부의 개입을 옹호하는 세력이 끊임없이 싸움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서로 보완할 수 있는 통합적인 경제체제를 이끌어내는 협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예전에 김지하 시인의 강의에서 자본주의와 생태주의가 공존할 수 있는 이중경제에 대한 이야기 비슷한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글쎄,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다툼 없이 평화를 유지하려는 건 인간의 본성이 용납하지 않는 것 같고, 성장을 고집하지 않는 풍요로움이라는 신도 깜짝 놀랄 대혁명을 감당할 그릇도 못 되는 것 같다.
위기의 본질이 사람이므로 위기를 막는 것도 숫자가 아닌 사람이라는 점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기계나 수리모형은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 p.233
‘숫자 없는 경제학’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경제의 주체가 인간이지 돈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경제가 위기다 아니다 운운하는 것이 결국은 사람이 살 만한가 아닌가를 얘기하는 것이니까. 돈이 만 가지 악의 근원이 되느냐 선한 도구가 되느냐, 힘겨루기의 무기가 되느냐, 화해의 상징이 되느냐 모두 인간의 마음에 달려 있다. 이제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전 지구적인 환경문제가 추가되었기 때문에 더 심각하게 여겨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