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밤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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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왕원슈안과 청수성은 교육사업을 통해 미래에 대한 큰 희망을 품고 있었다.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사회의 모순에다가 전쟁의 피바람까지 몰아친 1940년대 중국의 현실 속에서 그들의 꿈은 힘없이 허물어졌고 가장 기본적인 인간다운 생활조차 힘겨울 만큼 피폐한 삶을 살아간다. 낡은 가치관에 얽매인 어머니와 신교육을 받은 여성인 아내와의 고부갈등은 희망이 꺾인 채 몸까지 쇠약해진 왕원슈안을 더욱 괴로운 상태로 몰고 간다. 

   이미 소설을 접해본 독자들이나 앞으로 이 소설을 읽을 분들에게서 가장 많이 나올 탄식은 ‘아, 저 할매가...!’일 것이고 가장 많이 느낄 감정은 답답함일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상황이 아무리 최악의 상태일지라도 가족은 서로를 지키고 힘을 북돋워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삶을 위한 원동력이다. 하지만 끝까지 구시대의 관습과 노인 특유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결국 파국으로 몰고 간 가장 큰 책임은 주인공의 어머니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며느리이자 아내인 청수성은 마지막까지 마음의 갈등을 겪으면서도 남편을 생각했고 비록 깊은 애정은 주지 못했을지라도 아들에 대해서도 염려의 마음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힘들더라도 교육의 중요성을 생각해 무리해서라도 학비가 많이 드는 학교로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소설 간간이 시어머니에게 마음을 열기 위해 애쓰는 흔적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내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시어머니에게서는 전혀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가 없어 너무나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이 와중에 마음 약하고 우유뷰단한 모습으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기만 하는 왕원쉬안의 몸과 마음의 병은 더욱 깊어져만 간다. 결국 아내는 현실의 암담함을 견디지 못하고 마음의 짐을 진 채로 가족을 떠나게 된다. 마침내 전쟁은 일본의 항복으로 일단락되어가는 상황으로 갔으나 피폐하고 궁핍한 현실은 변함이 없다. 아들이 가끔 집으로 돌아와 조금이나마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날을 제외하고는 항상 어머니와 둘이서 황량한 삶을 살아가던 왕원쉬안은 청수성의 아내로서의 결별 편지와 유일한 자기편이라 할 수 있었던 지인의 죽음으로 삶에 대한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병은 더욱 악화되어 결국 죽음을 맞는다. 

   표면적으로는 고부간의 갈등이나 신세대와 구세대 간의 갈등,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실질적인 힘을 전혀 내지 못하는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결국 이러한 다양한 인간사의 비극을 이끌어내는 것은 더욱 거대한 어떠한 힘과 그것으로부터 비롯되는 전쟁과 같이 민중들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상태로 내모는 세상의 법칙 내지는 지도자들의 탐욕이며, 작가는 이를 한 가족의 파국을 통해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설 말미에 나오는 길가는 사람들의 대화 내용 중 “승리는 그들의 승리지, 우리의 승린가.”(p.316)란 말이 이 소설을 가장 잘 압축해주는 표현 같았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희로애락은 어느 시대에나 볼 수 있는 흔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희로애락이라는 것의 알맹이가, 이 시대에는 겉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내적으로는 더욱 비인간화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갈수록 황량하게 만드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그 누군가가 아니라면 어쩔 수 없는 우주의 법칙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역사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아귀를 가진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궁금증과 두려움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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