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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ㅣ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카린 H. 그림 지음, 하지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린 화가들로는 르누아르나 조르주 쇠라 등이 있다. 르누아르의 풍성한 색채와 아름답고 평화로운 느낌의 그림들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싶어 했던 나에게 잘 맞는 화풍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점묘법이라는 독특한 작법으로 유명한 조르주 쇠라의 그림에 이끌렸던 이유는 공간을 가득 매우는 그의 그림 속 다양한 색채의 입자 하나하나가 쇠라를 처음 접할 당시의 내게 세상이 비친 방식과 비슷했기 때문으로 느낀 놀라움과 작품의 차분한 느낌 때문이었다. 텔레비전의 빈 채널로 돌려보면 무수히 많은 흰 점과 검은 점이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는 듯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조화로운 장면을 연출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그의 그림에서도 그런 인상을 받았다. 쇠라를 접할 당시에 나는 하늘이나 하나의 색채로 채워진 공간 등을 바라볼 때 작은 점들로 꽉 차 있는 것으로 보여 내 눈에 이상이 있었던 건 아닌가 걱정을 하던 시기였다. 그런 때에 본 쇠라의 그림을 보면서 세상이 그런 식으로 보이는 시기가 길든 짧든 개인에 따라 있을 수 있겠구나 싶어 안심하기도 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표현 양식에는 한 순간의 직접적이고 생생한 ‘인상’이 포함돼 있다. 이는 종종 사건 전체의 우연한 일부분으로 보이도록 표현된다. 그것은 19세기 말까지 전통적인 미술의 자산이었던 고대 이야기나 신화 주제의 그림과 대조되는 현대의 일상생활 속 인물들과 장면들이다. 노동자와 매춘부, 거리의 행인이나 카페의 손님 - 인상주의자들은 이런 사람들의 묘사가 예술적으로 가치 있다고 처음으로 간주한 화가들이다.” (p.9)
인상주의 화가들이 이룩한 업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의 전통과 관습에 얽매여 경직된 사회의 분위기를 보다 다양한 형태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 데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반 고흐에게 있어 인상주의는 반 고흐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 통과점의 역할을 했을 뿐이지만 그가 말한 것처럼 자체적으로 갱신하며 확장하는 특성을 지닌 인상주의의 정신은 지금까지도 그 효용성이 증명되고 있지 않은가. 인상주의 운동을 기점으로 예술의 다양성은 더욱 극대화된 것 같다. 불쾌한 것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에서 그림만으로라도 사랑스럽고 예쁜 어떤 것들을 계속 창조해내고자 했던 르누아르 같은 인상주의 화가가 있었는가 하면 19세기를 휘감는 특유의 분위기를 공기의 흐름, 정물이나 사람의 표정, 군중, 현대적인 건축물, 끊임없이 변화하는 강 수면의 순간순간들로 담아낸 화가들도 있었다. 또한 순간의 인상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을 두고 천천히 변화하는 흐름을 한 화폭에 담아내려 한 시도도 있었다. 이렇듯 인상주의는 강제되고 획일화한 시선이 아니라 한 덩어리의 대중에서부터 개별적인 각 사람의 마음속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담겨 있는 세계의 초상을 모두 용인해줄 수 있는 품을 제공해 준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날의 포스트모던한 세상의 출발점은 이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인상주의로 분류되는 그림들을 보면 대체로 아름답다. 그림이 담고 있는 감정이 행복에 가득 차 있거나 슬프거나 메말라 있거나 혼란스럽거나 피곤하거나 불온하거나 하는 것들에 관계없이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인상주의로 통하는 작품들은 이 세계와 나를 포함하고 구성하는 모든 순간들이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전하려고 하는 것처럼 생각되어서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게 주어진 본질적으로 아름다운 삶의 모든 요소들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어떻게 활용하며,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일까? 인상주의는 내게 이러한 선택의 몫을 남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