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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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교적 풍요롭지 못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다 하더라도 나는 왠지 돈 때문에 그런 거라는 생각은 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지나고 전반적으로 나라 자체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2002년을 전후로 한 시기에서조차도 꿈과 희망, 열정 같은 보이지 않는 가치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 시기 이후로 인터넷의 비약적인 기술발전과 금융시스템의 비상식적인 발달에 의해 촉발된 물질만능주의의 흐름이 완강해지고 나서야 나의 돈에 대한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고, 지금은 최소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만큼은 돈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것은 너무나 슬픈 깨달음이었다. 금융이란 현실세계를 뒷받침하기 위한 최소한의 역할에 머물러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사람들에게 허황된 망상을 심어주는 괴물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고 나는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그 시스템의 끄트머리에 달라붙어 빌빌거리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조금이라도 내 삶에 대해 주체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힘쓰려는 노력도 하고는 있지만 앞이 너무 깜깜해서 답답한 것이 사실이다.  

   박범신 선생님의 신작 ‘비즈니스’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삶의 모든 부분, 즉 태어나서 교육을 받고 진학을 하고 사람을 사귀고 직장을 구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행위 등 그야말로 삶의 모든 측면이 비즈니스라는 전략으로 점철되어버린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모든 것이 자본과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아들에게 주기 위해 ‘투자’ 행위로서 몸을 파는 여자, 밀려오는 시장의 파도에 힘없이 무너져 내린 삶의 기반을 지키기 위한 눈물겨운 도둑질을 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잔혹한 자본주의 세계에서 패배자라는 낙인을 달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런 식의 몸부림을 통해 과연 행복한 미래는 가능한 것일까?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물들이 잘 살건 못 살건 이 돈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정신과 영혼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현 세태를 꼬집는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이 독자의 가슴을 아프게 찔러온다. 세상적인 눈으로 봤을 때 어딘가 모자라고 아픈 인물을 통해서만 순수함이나 희망의 가느다란 끈을 볼 수밖에 없는 것인가 답답함이 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작가는 최근 문학작품들에서 자본주의로 황폐화된 현실에 대한 비판을 보기가 힘들다고 말하면서 이런 시도들은 계속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세상이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면 훨씬 더 좋다는 것 또한. 2010년 한 해 동안 ‘정의’라는 가치에 한국사회가 얼마나 열광적이었던가만 봐도 여전히 사람들이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열풍조차도 상업적 전략으로 이용되는 현실을 어찌하랴. 대안경제적인 시도들이 여러 가정과 작은 공동체 단위로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그 파급효과는 사실 미미하다. 오히려 그들만의 계급을 형성하게 되는 부작용이 걱정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물음표만 수북이 남긴 채 마지막 책장을 덮고 말았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시대를 향한 비판의 칼날은 계속 휘둘러져야 한다. 영화 ‘로스트 라이언즈’의 마지막 대사처럼, 최소한 시도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이 당장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더라도 미래에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낳게 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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