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와인
엘리자베스 녹스 지음, 이예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어느 날 천사가 내 앞에 나타나 일 년에 한 번씩 올 테니 그때마다 만나서 지난 시간의 이야기들을 나누자고 제안해온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영적인 존재를 눈앞에 두고 나는 가슴 설레며 흔쾌히 수락할까 아니면 두려운 나머지 아무 말도 못하고 얼어버릴까. 천사라는 존재는 선한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지만 막상 다른 세상, 다른 차원의 존재를 만나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할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다.

   19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프랑스의 와인 생산 지역에 살던 한 사람이 바로 이런 일을 겪게 된다. 여자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던 주인공 소브랑 앞에 난데없이 천사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분명히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형태를 띤 존재로. 이후 50여 년간 이 둘의 만남은 지속된다. 사람과 천사와의 만남이 이뤄지는 이 기간 동안 다양한 사건들이 얽히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천사와의 만남이 우정에서 사랑으로 변해가는 과정, 천사와의 만남 이후의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의 행동으로 답답해하는 가족들과의 갈등, 점점 늙어가는 인간과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천사의 대비되는 모습, 작가 특유의 세계관이 투영된 천사의 이력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포도주의 숙성단계와 인간의 삶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듯, 소설 각 장의 내용에 포도주의 종류나 상태 등을 뜻하는 단어들로 제목을 붙여 연관시켜 전개시키는 방법이 흥미로웠다.

   작가가 뇌수막염에 걸렸던 기간 동안에 보았던 환상에 영감을 얻어 이 소설을 집필했다고 되어 있는데, 현실과 환상적인 요소를 독자의 입장에서 무난히 받아들일 수 있게 한 능력이 돋보인다. 이런 색깔이 다른 작품들에도 녹아 있다고 하니 꼭 보고 싶다. 또한 ‘천사의 와인’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꼭 구해서 보고 싶다. 이 환상적인 내용의 소설을 어떻게 영화화했을지 매우 궁금하기 때문이다.

   천사와 인간의 육체적인 관계를 묘사한 부분이 처음에는 놀랍고 거부감이 일었지만 상상력이 중요한 요소가 되는 문학작품임을 감안하면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지신 분들이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궁금하게 한 작품이었다. 이건 정말 진부한 표현이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책 자체에서 포도주 향기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문장 하나하나가 섬세하고 훌륭했다. 다 읽고 나서는 아주 좋은 품질의 포도주를 마음껏 즐긴 듯 취한 느낌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무엇보다 뉴질랜드 출신의 엘리자베스 녹스라는 또 한 명의 멋진 작가를 알게 되어 아주 만족스러웠던 독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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