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모든 것을
시오타 타케시 지음, 이현주 옮김 / 리드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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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제목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장르도 모른 채 제목만 보고 끌렸다. 그리고 소설인 걸 알았다. 소설 제목이 ‘존재의 모든 것을’이라니, 얼마나 깊고 묵직한 내용을 담았을까 기대했다. 그리고 유괴 범죄소설인 것을 알았다. 범죄소설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범죄 내용을 다룬 소설의 제목치고는 너무 거창한 것 같았다. 제목과 초기 줄거리의 갭 차이 때문에 기대치가 약간 떨어졌다.

초반부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동시 유괴’라는 요소다. 비슷한 시기에 2건의 유괴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현실에서는 유괴 사건의 특성상 1건의 사건이 터지면 그에 대응하는 경찰의 움직임이 전개되기 마련이다. 작가는 여기서 거의 동시에 2건의 유괴 사건이 터진다는 설정으로 독자의 흥미를 일으킨다.

동시에 2건의 유괴 사건이 터진다는 것은, 아무리 해당 범죄에 경험이 쌓인 경찰이라 하더라도 수사력 분산이라는 변수에 흔들릴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른 범죄 해결의 어려움이 더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난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독자는 관심을 가지고 읽어가게 될 것이다.

이 정도까지 읽으면 범죄 용의자들이, 자작극이든 혹 경찰 조직의 특성과 생리를 잘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든, 꽤나 철저하게 유괴 계획을 세운 것 같지만, 작가는 여기서 독자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너무나 허무하게 사건은 미해결 상태로 종결되고, 세월은 30년을 훌쩍 넘어 이야기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고 난 후, 사건 관계자들, 예를 들어 피해가 가족이나 담당 형사들, 또 당시 사건을 취재하던 언론인들 등이 번갈아 등장하면서 베일에 싸여 있던 사건의 진실이 한 겹씩 벗겨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500쪽이 넘는 소설의 3분의 2가량이 지나가도 여전히 ‘존재의 모든 것을’이라는 묵직한 제목이 어울리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힘들다.

와, 그런데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400쪽이 넘어갈 무렵부터 이 소설은 진가를 드러낸다. 서장과 종장을 포함, 총 11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의 8장 후반부부터 왜 이 소설이 단순한 유괴 범죄를 소재로 한 이야기가 아닌지를 감동적으로 입증한다.

작가는 자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유괴 범죄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앞세웠는데, 읽어갈수록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의 흐름, 가족의 진정한 의미, 예술이란 무엇인가 등 그 목적이 존재라는 단어가 아우르는 우리 삶의 다양하고 복잡한 측면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데 있다고 느꼈다.

사실 우리를 둘러싼 거대담론이나 존재론, 우주론, 실존 같은 철학적 문제들은 내가 살아 있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다. 내가 직접 부딪히고 뒹굴고 온몸과 마음으로 겪어내지 못하는 순간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삶을 소중히 여기며 전력을 다해 겪어내는 것, 그것이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실증(實證) 아니겠는가? 이 소설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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