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역사 - 알지 못하거나 알기를 거부해온 격동의 인류사
피터 버크 지음, 이정민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류가 우주를 향해 띄운 탐사선이 태양계를 벗어난 시점에 와 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우리는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구에 대해서조차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땅 속도, 깊은 바다 속도, 모르는 것투성이다. 그런데 모르는 것이 이토록 많은데도, 인간은 지구를 인간이 살기 어려운 환경으로 만드는 데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다. 가장 위험한 도박과 다름이 없다.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데 말이다.


저자는 “무지에 따른 재앙”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무지가 단순히 무지라는 상태로 순진무구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어떤 행동으로 이끌어 재앙을 일으킬 위험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에서는 특히 전쟁과 비즈니스, 정치의 영역에서 통제하는 사람의 무지와 정보가 불충분한 일반인들의 무지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일으켜 재앙을 일으키는지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과거보다 현재에, 그리고 현재보다 미래에 더 지식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모든 시대를 무지의 시대로 규정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학문과 기술, 저장 매체의 발달로 집단의 차원에서는 이전 어느 시대보다 많은 지식을 축적했지만, 그것을 개인 차원에서 활용하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 것, 다시 말해 집단의 지식과 개인의 지식이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개인의 무지 문제를 넘어 집단의 무지라는 주제에서 흥미로운 견해들을 다루고 있다. 특히 성과 인종, 계급의 차원에서 지식과 무지라는 개념이 어떻게 통제와 의도적 차별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인종 문제에 있어서는 아프리카 노예를 비인간화하는 과정에서 그들도 인간임을 일부러 모른 척한다든지, 남성이 자신이 권위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여성의 존재를 격하하거나 무지한 상태가 미덕인 것처럼 왜곡한 사례 등이 눈에 띈다.

이 책의 주된 주장 중 하나는, 새로운 지식이 새로운 무지를 낳는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기록 매체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새로운 지식이 나타나면 이전 지식 중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부분을 줄여서 그 자리에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채우는 식으로 지식을 다뤘다. 대표적인 예가 백과사전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너무 많은 정보가 오히려 실속 있는 지식화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 앎이 없는 상태, 모른다는 것,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 등 무지와 지식의 개념도 다양하게 분화되어 이 책의 후반부에는 아예 무지에 관한 용어 사전을 3페이지에 걸쳐 정리해두었다. 단순히 몰라서 모르는 게 아니라 이런 무지의 상태도 상황에 따라 자기의 이익을 위해 수단화하는 인간의 놀라운(?) 능력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