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 - 현대 문명의 본질과 허상을 단숨에 꿰뚫는 세계사
수바드라 다스 지음, 장한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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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서 제목인 'uncivilised'는 ‘미개하다’는 뜻이다. 문명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덜 발달되고 뒤떨어진 느낌을 준다. 미개하다는 것은 곧 ‘비문명화’ 또는 ‘문명화되지 않은 상태’라고 이해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문명 혹은 문명화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현대사회에서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문화, 제도, 기술,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누리는 상태 또는 현상을 문명이라고 부르면 될까?

문명의 이루는 요소로 이 책은 열 가지를 말한다. 과학, 교육, 문자, 법, 민주주의, 시간, 국민, 예술, 죽음, 공동선이다. 과학, 교육, 문자, 예술 등은 직관적으로 문명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진다. 민주주의는 잘 모르겠다. 시간이 흐를수록 역기능을 많이 목격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시간, 죽음, 공동선 같은 추상적 색채가 짙은 개념은 문명이라는 필터를 통해 그 의미가 재정의되어 선택된 것 같다.

이 책이 제기하는 문제는 문명을 누가 규정하고 있는가이다. 규정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영광스럽고 찬란하기만 할 것 같은 문명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편향적이고 추악한 본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특히 식민지 역사와 관련하여 서양의 백인중심 사상이 자기들의 이익과 권력, 탈취와 학살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다양한 프레임으로 문명을 규정하고 구성해왔다는 것이다.

문명 개념의 잔혹성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사람들을 인종으로 구별하여 어떤 인종은 우월하기 때문에 특혜를 가질 자격이 있고, 어떤 인종은 열등하여 비인간으로 격하시켜 마음대로 해도 되는 존재로 취급해왔다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예, 노예무역이다. 그리고 이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학이나 교육, 문자 등이 수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우생학의 탄생과 발전이다. 부적합한 인간들을 걸러내고, 뛰어난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만 남겨 우수한 인종으로 유지하겠다는 천박한 발상이다. 여기서도 우수한 인종은 서양 백인을 의미한다. 인간을 측정할 수 있는 대상으로, 수치화하여 분류할 수 있다는 개념이 문명의 토대임을 이 책은 고발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가 배운 역사는 전체 역사가 아닌 일부의 역사다. 곧 서구의 백인우월주의 사상을 배경으로 한 역사다. 야만에서 원시, 문명으로 이어지는 관점도 그들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것이 다가 아니며, 이 문명 개념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다른 이야기, 다른 사람들의 삶이 왜곡되고 삭제되어 왔는지를 알려준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문자나 의사소통, 세계를 인지하는 방법의 존재 양식과 관련한 것인데, 흔히 표의문자나 표음문자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가 아닌 다양한 언어 표현 방식이 있다는 사실과, 서양 과학의 합리성만으로는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세계의 속성을 더 폭넓고 깊게 인식하고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이른바 제3세계라 할 수 있는 부족이나 문화권에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것을 서구의 백인우월주의가 어떻게 폄훼하고 제거해왔는지에 대한 사실이었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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