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 - 20세기 제약 산업과 나치 독일의 은밀한 역사
노르만 올러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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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한나 아렌트다. 한나 아렌트는 우리에게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나 아렌트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정치철학자 중 한 사람이 된 데는 ‘악의 평범성’과 ‘사유하지 않는 인간의 위험성’을 주장하며 나치 학살과 세계대전 등 인간이 초래한 비극들의 본질의 핵심적인 측면을 꿰뚫은 것과, 아울러 그 통찰이 현대의 위기를 진단하는 데도 적절한 사유 도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출간된 『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가 특별한 이유는, 한나 아렌트와 같은 학자들이 밝혀낸 악의 평범성이나 무사유의 위험성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이상적 열광 현상, 즉 나치 선동에 휩쓸려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잔인하게 죽어가는 상황을 목격하면서도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당대 독일 시민들의 상태, 그리고 아무리 신분 때문이라고는 해도 그런 상황이 이어지도록 계속 협조하고 순응할 수 있었던 군인들의 상태에 대해, 왜 그들이 정말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주는 강력한 역사적 근거, 우리가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요인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는 데 있다.

광신적인 상태에서 일상을 유지하는 괴기한 상황이 가능했던 결정적 이유는 바로 ‘약물’이었다. 이 책은 당시 독일 사회에 만연한 약물의 실태를 기록 문헌을 통해 추적하고 있다. 그렇다. 약물 때문이라면 카리스마나 대중 선동력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히틀러의 영향력이나 당시 사회상, 사람들의 심리가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컨대, 당시 약물은 히틀러에서부터 일반 민중, 사회 전반에 걸쳐 크고 작은 영향을 쉴 새 없이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약물의 효용성과 위험성은 그것이 이데올로기보다 더 강한 통치 혹은 선동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를 연구할 때 절대 가볍게 봐서는 안될 테마임을 이 책은 알려주고 있다. 그러니까 이데올로기 따위만으로 사람들이 그렇게 미친 짓을 하고, 독재자에게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 사람들의 심리와 신경계통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는 조치가 있어야만 가능했던 행위들, 그 핵심에 약물-마약이 있었던 것이다.

히틀러가 마약 중독자였는가 하는 점, 그리고 만약 약물에 의지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어떤 경로로 그것이 가능했는지 추적하는 과정을 따라가 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더불어 당시 독일의 과학 기술의 발전상과, 전쟁 패배 이후 나치가 독일 사회를 장악하기까지의 기간에 특히 제약 산업이 활성화될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부작용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사람들의 활기를 북돋우는(?) 약물 제조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던 문화적 배경까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읽어볼 만하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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