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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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면서도 삶의 중심 이슈로 부각되지 못하고 항상 뒤에 미뤄진 채로 방치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가 어떤 대형 사고나 사건이 발생해 그 현상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많은 관심을 받고 이야기의 주제로 자주 등장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듯 죽음은 또 사람들로부터 외면받는다.

대부분의 죽음은 고통을 수반한다. 평안하고 안정적인 죽음을 보기는 쉽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편히 쉬듯, 잠이 들듯 죽음을 맞는 이상적인 모습은 드문 축복이다. 따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순간에 경험하는 두려움과 공포, 분노, 부정, 불안, 괴로움, 고통 등은 거의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욱 강화한다.

저자는 이런 죽음의 패턴에 변화를 일으키려 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저자는 죽음이 삶의 결과물이며, 죽음을 앞둔 고통의 시간은 정리가 필요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온전한 정리를 위해서는 적어도 고통으로 신음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돌봄이 필요하다. 줄어든 고통은 죽음을 앞둔 시간을 보다 인간적이고 존엄성을 지키는 시간으로 바꿀 수 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갖고 갈 것인가. 이에 대한 저자의 비유가 인상적이다. 죽음은 쪽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죽음은 삶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할 훌륭한 이유가 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하루키의 소설에서 본 것으로 기억되는 한 문장이 떠오른다. 그 문장의 요지는 이랬다. 죽음은 그대로 끝이 아니라 삶의 대극으로서 이어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죽음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이별을 의미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도 마지막까지 남은 과제가 있는 셈이다. 죽음을 의연하게 맞을 수 있다면, 죽음은 단지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완성하는 최종 단계이자, 이어지는 영속적 의미를 갖는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저자가 말하는 완화의료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다 포괄적인 관점에서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의 심리는 어루만져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완화 효과를 보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실제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약물의 적절한 활용도 중요함을 알려준다. 이렇게 얻어낸 죽음을 앞둔 환자의 안정된 심리는 본인은 물론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할 사람들에게도 평화의 원천을 제공한다.

“환자의 극심한 고통을 다뤄야만 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것이 아닌 통증을 흡수한다” 이 대목에서는 죽음을 앞둔 환자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 환자를 대하는 의료진의 심리와 건강도 무척 중요함을 알려준다. 저자 역시 자신만의 경험과 이론이 온전히 정립되기 전에 환자를 대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고통을 경험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런 개인적인 고난의 시간을 겪으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통찰을 이끌어낸다. “환자들을 온전한 인간으로서 포괄적인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나의 모든 일들은 우선 나 자신과 내 삶을 보살피는 데 헌신한 뒤에야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

“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병을 치료할 방법은 없을지라도, 그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남아 있다” 환자를 돌본다는 것은 단순히 그 환자의 병을 관리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 환자의 존재, 삶을 돌보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일깨운다. 여기에서 나는 우리나라 의료시스템도 상당히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환자 한 사람을 온전히 인격적으로 대하기에는 너무나 바쁘게 순환되는 진료시스템이 궁극적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마저 경색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민영화 논란이 여전한 가운데, 과연 산 사람이나 죽음을 앞둔 사람 모두를 인격적 차원까지 포괄하는 폭넓은 돌봄이 가능할지, 우리나라가 진정한 의미의 의료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 등의 의문이 잇따른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제공하는 양질의 삶, 이것은 저자가 생각하는 완화의료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죽음이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고 두렵고 떨리는 현상이 아니라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임을 마지막 순간까지 인식하게 하는 것은 저자가 주장하는 완화의료 효과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신체적 증상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 정서적 돌봄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것도 상당한 효과를 보인다고 저자는 설명하지만, 병 때문에 심각한 통증을 겪는 환자의 경우 약물적 조치는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적인 접근도 중요하다. 모르핀을 비롯한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다양한 약물이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광범위한 제도적, 재정적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뜻있는 몇몇의 노력만으로는 제한된 수의 환자들만이 그 혜택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넘어 아름다운 죽음”으로 죽음의 대중적 인식의 단계를 보다 발전·확립시키려는 저자의 그간의 노력과 흔적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은 죽음이 단순히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완성을 위한 단계임을 보다 깊이 인식하게 한다. 우리는 죽음을 인지하지만, 온전히 경험할 수 없다.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고 타인에 대해서도 그렇다. 하지만 죽음은 엄연히 존재하며, 우리는 겸허하면서도 적극적인 태도로 죽음을 더 깊이 생각하고 일상의 담론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이것은 물질만능주의로 경박해진 오늘날의 세태를 조금은 바른 방향으로 개선해줄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에 적절한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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