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방
알렉스 존슨 지음, 제임스 오시스 그림, 이현주 옮김 / 부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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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물리학이 밝혀낸 가장 놀라운 신비 중 하나는 대상의 상태가 관찰자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즉 관찰자에 따라 관찰 대상은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주체와 타자의 관계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줄 때에만 관계가 성립하는 신비, 우리는 그런 관계를 작가와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머무는 공간에서 발견할 수 없을까?

작가와 작가가 글 쓰는 공간의 긴밀한 관계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에서도 그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그녀는 가장 일상적인 공간인 집과 방의 예를 들면서 “누군가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그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그가 살던 집을 한 시간 둘러보”는 것이 더 낫다고 권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작가가 머무는 공간을 증인으로 승격시킨다. 즉 공간을 주어로 만들어 공간이 간직하고 있는 작가의 기억과 흔적을 이끌어낸다. 그 기억과 흔적에는 작가의 생각과 습관이 드러난다.

이 책은 작가들이 실제로 글을 쓰거나 영감을 받는 곳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처럼 독특한 습관이 곧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도 소개한다. 특이하게도 그는 “썩어 가는 사과 냄새를 맡아야만” 글이 잘 나왔던 모양이다. 이처럼 특정 공간이나 습관은 의식(ritual)의 형태로 작가들에게 영감과 개성을 부여한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 중 특이한 것은, “많은 작가들이 누워서 혹은 침대에서 글을 쓴”다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누워서 일하는 것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서 하는 것이 일에 효율적이라고 해서 거기에 맞는 사무용 가구까지 소개된 걸 봤는데, 예술 쪽에서는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니 무엇이 맞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시인들 중에는 별종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 많은데, 영국의 이디스 시트웰이라는 시인은 관에 뚜껑이 열린 상태에서 누워 작품을 구상하는 특이한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어떤 형태로든 등이나 배가 바닥에 닿아 있는 상태를 선호하는 작가들이 있었다고 하니 글쓰기의 정자세 같은 것은 없다고 보는 편이 좋겠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한창 주목받는 해외작가인 마거릿 애트우드 같은 경우는 특정 공간이나 시간대에 구애받지 않는 하이브리드형 작업 방식이 몸에 밴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고집하는 루틴도 없다고 한다. 여러 아르바이트로 분주하게 보냈던 20대에는 주로 밤에 글을 썼고, 작가로 성공하고부터는 아침에, 자녀가 생기고부터는 딸이 학교에 있는 시간 동안 썼다고 한다. 그녀는 때마다 형편에 맞게 글을 쓰는 재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가장 축복받은 작가 유형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경향은 “온 세상이 책상”이라는 좌우명을 지닌, 맨부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영국 소설가 힐러리 맨틀에게서도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유일하게 습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바로 마거릿 애트우드 외에도 많은 작가들이 힘을 빌리곤 하는 커피 정도라고 한다.

이 책은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특별한 선물이 될 것 같다. 특히 작가들의 생각과 생활 그리고 작품과의 관계를 이론적인 차원이 아닌 일상의 삶이라는 보다 친밀한 공간에서의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서하는 삶에서 글쓰기까지 문학적 취향을 확장하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작가론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즐거움과 독특한 작가론, 작품론을 겸한 흔치 않은 문학 종합 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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