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가장 울림이 큰 말은 바로 ‘언어는 생각의 집’이라는 표현이다. 특히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에서 핵심이 되는 것이 언어 교육 정책이었다. 일본어가 곧 우리 민족의 국어가 되어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아이들은 그것이 무슨 속뜻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고 일본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도록 한 강요를 받아들였다. 받아들이게 하는 방법이 여간 고약한 것이 아니었다. 실수로 우리말을 한 마디라도 하게 되면 미리 나눠준 표 같은 것을 한 장씩 뺏어올 수 있는 놀이 혹은 보상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아이들은 그것을 하나라도 더 받아 이득을 보려고 정서적으로 심약한 아이 옆에 붙어 이놈이 한국말을 쓰나 안 쓰나 감시하는 행위를 죄의식도 없이 해댔다. 심지어 집에까지 쫓아가 귀를 기울였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언어가 생각의 집이라는 말에는 우리가 어떤 언어를 쓰느냐가 중요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어떤 언어가 입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어떤 문화에 속해 있는지, 또 어떤 지식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습득했는지도 중요하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한 한자 문화권인 아시아, 그중에서도 종주국인 중국와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에서 같은 한자가 어떤 식으로 변용되어 미묘한 차이를 나타내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각국의 문화가 어떤 방향성을 갖고 발전하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특히 이렇게 갈라진 의미를 한 데 모으면 그것이 바로 온전한 하나의 정론으로 형성된다는 것에서 이어령 선생님의 탁월한 통찰을 보게 된다. 예를 들어 ‘공부’가 중국에서는 여가를, 한국에서는 배우고 익힘을, 일본에서는 생각한다는 의미를 각각 지닌다고 하는데, 이것들을 합칠 때 훌륭한 교육론이 된다는 통찰이다. 즉 “시간 여유가 있어야 공부할 수 있고, 공부를 해야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의미 있는 교육론이 도출되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