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의 생명사 - 38억 년 생명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것은 항상 패자였다! 이나가키 히데히로 생존 전략 3부작 3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박유미 옮김, 장수철 감수 / 더숲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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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의 제목에서 ‘생명사’라고 하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생명사는 생명의 역사다. 보통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은 진보와 발전이다. 생명은 살아 있는 것이고, 살아남아 생존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았거나, 현재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지금 기준으로 최적이면서 최고의 진보적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만물의 영장, 지구의 주인을 자처하는 인간은 모든 생명체 중에서 최고, 최적의 형태라고 할 수 있는가? 인간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본다면, 쉽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순하게 생존을 유지한다는 기준으로만 본다면 죽지 않고 가장 오래도록 생명 활동을 이어가는 것은 놀랍게도 바다에 있는 조류나 땅속에 있는 지의류, 곰팡이 등의 균류다. 평균 수십 년을 사는 인간이나 하루살이같이 비교적 수명이 짧은 축에 속하는 생명체들은 대신 새로운 개체를 생산하여 대를 이어가는 전략으로 종을 보존한다. 단일 생명이 오래 사는 것과 종족 재생산으로 종 단위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전략 중 어느 것이 더 뛰어난지 판정하기는 어렵지만, 생명사라는 주제에서 인간이 무조건 1등 자리를 차지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포유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까지의 과정이다. 다시 말해 지구에서 가장 먼저 출현한 생명의 원시적 형태인 세포 단위의 원핵생물부터 시작해, 원핵생물이 진핵생물로 진화하고, 단세포 생물이 다세포 생물로 진화하는 과정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근래 읽은 생명의 초기 발생과 진화 과정을 간략하면서도 가장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 아닌가 싶다. 초기 생명체의 형태는 단세포 생물이라 할 수 있는 원핵생물 혹은 박테리아다. 이들은 지금도 살아남아 인류와 공존하고 있다. 가장 단순한 형태로서 성공적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원핵생물을 제외한 동물과 식물, 균류가 진핵생물에 해당한다. 이 세 종류는 진핵생물로 진화한 생명체가 선택한 세 가지 생존 전략의 결과다. 모든 생존 전략에서 공통적인 요소는 바로 공생과 협력, 효율적인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효율로만 따지면 식물과 균류가 돋보이고, 동물이 가장 열등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세상은 기본적으로 약육강식의 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각 시기마다 지구를 지배했던 최강의 포식자들이 전 지구적 전환기에 가장 먼저 멸종 대상이 되었음을, 그리고 작고 연약한 종들이 서로 무리를 짓고 협력하여 다음 시대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과정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성의 발생 이유다. 남성과 여성 혹은 수컷과 암컷의 역할 분담이 생긴 이유가 보다 효율적인 유전자 교환을 통해 종을 계속 유지하려는 최적의 전략 본능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종을 가장 오래 유지하는 방법으로 ‘죽음’이 발명된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이를 “영원하기 위해 생명은 유한한 생명을 만들어 내었다”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오랜 생명 진화의 역사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사건으로 전 지구적 재앙이라 할 수 있는 두 번의 스노볼 어스, 즉 ‘눈덩이 지구’의 개념을 배우게 된다. 적도까지 꽁꽁 얼게 되는 시기를 말하는데, 이때를 견디며 살아남은 생명체의 구조적, 기능적 진화가 비약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을 통해, 시련과 고난이 생명 또는 삶을 강하게 한다는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변하지 않는 진리이자 교훈을 얻을 수 있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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