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책의 제목에서 ‘생명사’라고 하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생명사는 생명의 역사다. 보통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은 진보와 발전이다. 생명은 살아 있는 것이고, 살아남아 생존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았거나, 현재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지금 기준으로 최적이면서 최고의 진보적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만물의 영장, 지구의 주인을 자처하는 인간은 모든 생명체 중에서 최고, 최적의 형태라고 할 수 있는가? 인간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본다면, 쉽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순하게 생존을 유지한다는 기준으로만 본다면 죽지 않고 가장 오래도록 생명 활동을 이어가는 것은 놀랍게도 바다에 있는 조류나 땅속에 있는 지의류, 곰팡이 등의 균류다. 평균 수십 년을 사는 인간이나 하루살이같이 비교적 수명이 짧은 축에 속하는 생명체들은 대신 새로운 개체를 생산하여 대를 이어가는 전략으로 종을 보존한다. 단일 생명이 오래 사는 것과 종족 재생산으로 종 단위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전략 중 어느 것이 더 뛰어난지 판정하기는 어렵지만, 생명사라는 주제에서 인간이 무조건 1등 자리를 차지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