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는 죄가 없다 - 우리가 오해한 신화 속 여성들을 다시 만나는 순간
나탈리 헤인즈 지음, 이현숙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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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태어나면서 접하기 시작하는 세상은 순수한 형태가 아니다. 자연의 흐름과 작용, 사람들의 인위적인 가공이 누적되고 범벅되어 어찌어찌 형태를 이룬, 아니 지금도 이루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보거나 낯설다고 생각하는 상황이나 이야기의 이면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배경이나 이야깃거리, 원인, 재료가 숨어 있거나 의도적으로 가려져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는 표면의 시대에 농락당한 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겉으로 드러나는 한두 가지 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수히 그런 과오를 저지르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그 사람의 이면을 접하게 되고 더 깊이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반성을 하거나 그런 과오를 합리화한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판도라는 죄가 없다』는 신화 속 이야기들의 수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바로 그런 취급을 받아왔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려준다. 그리고 신화나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현실의 반영이라고 봤을 때, 그것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각 시대의 여성들이 어떻게 인식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책 제목의 주인공인 판도라만 해도 상당히 편향된 이미지로 우리에게 각인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우선 우리는 그녀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만 알고 있지 그녀가 왜 그런 운명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서, 그녀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녀의 삶은 어떤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나? 만약 온갖 재앙을 세상에 퍼뜨렸다면 그 이후의 그녀의 삶은 어떠했는가? 단순하게 생각해도 여러 궁금증들이 떠오르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바가 없다.

가장 많은 관심을 끌었던 메두사도 마찬가지다. 메두사가 목이 잘리는 이야기의 완결에서 그동안 부각되었던 인물은 오로지 페르세우스뿐이었다. 메두사의 이미지는 어떤 종류의 내러티브도 언급되지 않는다. 다만 괴기스럽고 공포스러운 겉모습과 보는 이를 돌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에 묻혀 메두사라는 캐릭터 자체가 어떤 맥락에서 등장하게 된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메두사라는 이름의 의미에는 수호자나 지배자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 중에서는 메두사가 죽으면서 흘린 피에서 탄생했다는 페가수스가 어쩌면 메두사의 피를 이어받은 후대를 상징화한 것일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자신이 죽으면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켰다는 관점으로 볼 수 이는데, 메두사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한 가지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초기 그리스 신화가 창작될 당시와 후대의 작가들이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각색하는 과정에서 신화 속 여성 캐릭터들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어왔는지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주로 창작자의 욕망과 시대의 관점이 그대로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헤시오도스나 에라스뮈스, (너새니얼)호손, 이솝 등의 인물이 오역이나 의역 등을 통해 이런 사례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제우스, 헤르메스, 에피메테우스 등이 이들로 인해 판도라와 관련하여 일종의 대중적 면죄부를 받은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것이 고정된 이미지로 자리 잡으면서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듯했다.

이 책은 그리스 신화를 다른 관점으로 읽는 하나의 좋은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고전을 읽을 때조차 어떤 틀이 작용하여 제한된 해석에 갇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그리스 신화야말로 그런 함정이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대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연역적 추론보다 발굴된 자료를 분석하여 신화의 이면을 밝혀내는 과정이 훨씬 흥미로운 작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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