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 목소리는 어떻게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가?
존 콜라핀토 지음, 고현석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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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좋다는 것은 확실히 장점이다. 좋은 목소리는 그 목소리를 가진 사람의 인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외모가 평범해도 목소리가 좋으면 전반적으로 그 사람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간다. 반대로 외모가 출중해도 그에 비례해 목소리가 듣기에 좋지 않다면 매력은 반감된다. 목소리와 외모가 어울리지 않아 당황스러운 느낌을 주는 대표적인 사람이 유명한 축구선수였던 데이비드 베컴이 아닐까 싶다. 한편 어떤 얼굴을 보면 거기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예상하게 되는데, 전혀 다른 느낌의 목소리를 들려주어 처음에는 당황스럽다가도 점점 더 큰 매력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그런 사례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보이스』에서 제목과 부제를 아우르는 ‘목소리’(voice)라는 단어를 봤을 때 금방 떠올랐던 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의 목소리와 생김새의 관계에 관한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훨씬 깊이 있는 시선과 관점으로 인간의 목소리를 다룬다. 나아가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자 인류 최고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언어’와 비교하여 그 중요성이 결코 뒤지지 않는,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 언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의미로서의 ‘목소리’를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소통 수단으로서의 언어의 역사가 10,000년도 채 되지 않지만, 목소리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진화론적 입장에서 봤을 때 인간이 지금의 인간의 모습을 하기 이전부터 생존을 위한 결정적 무기로 활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에 대한 관심이 놀라울 정도로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저자가 책 서두에 밝히고 있듯이, ‘목소리’라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광범위한 주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를 8개의 개별 항목(베이비 토크, 기원, 감정, 언어, 섹스와 젠더, 사회에서의 목소리, 리더십과 설득의 목소리, 백조의 노래)으로 정리하여 그 기원과 역사, 의미를 밝히는 저자의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내용도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개별 주제를 통해 목소리가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수놓고 있는지를 하나하나 확인해 과는 과정은 이 책이 주는 최대의 즐거움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이 책은 서문에서부터 매우 중요한 정보 하나를 알려준다. 그것은 성대의 상태가 단지 목소리의 이상만이 아니라 호흡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손상된 성대를 사용해 소리를 무리해서 내게 되면 폐에 들어가는 공기가 비정상적으로 채워져 과도한 호흡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목 상태가 약간 이상해도 말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면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목소리가 바뀌면, 그 목소리로 인해 삶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영향받을 수 있음을 알려준다. 단순히 생각해서 목소리가 나쁘게 변하여 호흡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이 초래할 어려움을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이 알려주는 목소리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이 하는 말에서 찾을 수 있는 운율적 요소, 즉 음악적인 성격이다. 말에는 운율이 있고 운율은 감정을 나타내며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목소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감정 표현의 범위가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같은 말이라도 운율의 차이, 다시 말해 표현 방식이나 어감에 따라 정반대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감정적인 차이가 발성 기관이 다르게 움직이는 신체적 차이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목소리는 언어에 비해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언어를 목소리보다 더 고차원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특징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런 믿음 위에서, 목소리가 언어의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저평가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퍼뜨린 장본인은 대표적인 언어학자인 노암 촘스키다. 촘스키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세계적인 지성인이다. 하지만 촘스키의 아성은 이미 그의 분야에서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언어 능력은 타고난 것이라는 그의 이론은 많은 허점을 드러냈다. 공교롭게도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및 알고리즘 기술의 발전을 통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능력이라는 쪽으로 무게추가 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목소리가 의미를 지닌 의사소통 수단으로 어떻게 발전했는지 짚어본 다음 본격적으로 사회학적, 정치적, 인문학적 관점으로 목소리의 기능과 효용을 따지는 부분은 바로 우리 시대의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어 더 집중하게 한다. 특히 역사의 흐름을 바꾼 연설로 평가되는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처칠의 영국 하원 연설, 루즈벨트의 노변담화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정 목적을 이루기 위해 대중에게 행하는 기술로서의 목소리의 특징은 키케로의 연설 기술을 다룬 저서까지 거슬러올라가 폭넓은 지식의 향연을 맛보게 하고, 인간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특정 행동을 하게 하는 목소리의 힘을 실감나게 한다.

목소리의 사회적·정치적 기능을 다루는 부분에서 또 주목할 만한 부분은 바로 오바마 대통령의 사례가 보여준 풍성한 언어적 배경과, 그가 정치 활동을 하면서 대선 주자로 거듭나는 과정이나 임기 중에 대중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이런 특성을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능력이었다. 반대로 어쩌면 축복받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오바마라는 사람의 이런 조건들이, 트럼프처럼 자격이 충분하지 않지만 대중 선동에 능한 사람으로 하여금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는 데 도움을 주는 요소로 작용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더불어 모든 종에서 목소리는 집단 내 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한 수단을 하는데, 사회성이 없는 파충류가 목소리를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런 목소리의 특성에 힘을 실어주어 흥미로웠다.

이것과 연결되어 주목되는 내용은 목소리와 민주주의와 독재의 관계를 조명한 부분이다. 목소리가 소통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한 일종의 메신저 기능을 하는데, 이것이 악용되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히틀러의 대중연설이다. 히틀러의 목소리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특징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흔들고 그의 의도대로 집단 최면에 빠져 선동될 수 있는지 밝히는 과정은, 진화인류학적으로 서로 협력하고 의지하면서 생존력을 키운 인류가 같은 방식으로 얼마든지 파멸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경종을 울린다.

일반적으로 정리된 언어와, 정제되지 않은 언어인 욕설 같은 나쁜 말이 나오는 경로가 뇌의 서로 다른 부분에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생각없이 말한다는 표현이 있는데, 실제로 생각없이 본능에만 충실한 말을 담당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성적이고 합리적 사고를 거쳐 나오는 언어와 감정적 언어는 같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의 삶이 목소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아왔고, 받고 있는지를 세세하게 밝히고 있다. 사람의 말 한 마디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독립적으로 떼어놓고 보면 목소리 자체는 큰 힘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뇌 과학과 인류학, 사회학, 정치 등으로 확인되는 사실은, 인간의 삶을 이루는 요소들 사이에서 목소리가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삶과 세계의 연결고리로서의 목소리의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깨달음과 지적 즐거움을 얻게 해줄 것이다.

* 네이버 「북유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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