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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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집의 전체적인 구성과 순서는 표제작인 「울 준비는 되어 있다」를 뒤쪽으로 배치하여 이 작품을 읽기 위한 준비 단계로 앞쪽에 다른 작품들을 전진 배치한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소설집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체로 바람을 피우거나 이혼하는 일이 너무 자연스럽다. 물론 그 자연스러움이 편안하고 깔끔한 것은 아니다. 나름의 괴로움과 외로움, 감정의 변화로 인한 고통이 이유로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감정선을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텅 비어 외로운데 몸은 충족되어 있다”는 아이러니에서 비롯된 경악감이, 이 책의 분위기를 적절히 축약해 놓은 듯하다. 사실 이런 감정은 너무 사치스럽지 않나? 더욱이 이 소설집이 출간된 것이 2000년대 초반인 것을 감안하면, 지금 대한민국 독자의 정서로서는 매우 변덕스럽고 꼭 저 심정을 이해해줘야 되는 것인지, 아니면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라는 반응이 나오기 딱 좋은 서사를 담고 있다.

「열대야」라는 작품에서는, “당신이 나이가 들어 늙든 머리칼이 어떻게 되든, 뚱뚱해지든 가슴이 쭈그러지든 당신을 좋아할 거야”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런 정서를 담은 표현은 작품집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런 사랑에 대한 간절한 마음과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반드시 헤어지고 말 것이라거나, 관계가 망가질 것이라거나 식으로 꼭 문제가 발생하고 말 거라는 불길한 예언을 거의 억지로 갖다붙이는 난해한 감성이다.

심지어 “나는 이 사람이 아닌 인간은 모두 가슴속에서 죽여 버렸다”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사랑의 진실성을 과격하게 묘사하는 부분도 볼 수 있는데, 그런 강렬한 사랑의 감정에 어찌 반대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그것도 제3자가 엮여서 그런 가능성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지 좀처럼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런 걸 두고 풍요 속 빈곤이라 할 수 있을까? 앞서 사치스러운 감정이라고 했지만 속된 말로 배부른 소리를 이렇게 문학이라는 옷을 입힐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골」이라는 작품에는 “우리 살기는 같이 살아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어, 알아, 그거?”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런 정서 역시 작품집내 다른 작품들에서도 동일하게 나온다. 흥미로운 것은, 예를 들어 남자가 바람을 피우는 걸 알고 여자가 당혹스럽고 실망스런 감정을 표출하는데, 그게 여자도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상황의 황당함이다. 결국 양쪽이 다 권태기 같은 것에 빠져서 딴짓을 하고 있다는 건데, 어느 한쪽의 감정이 극대화되어 어떤 이야기로 승화되는 것 자체가 문학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건지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의 서정적인 문체나 문장의 흡인력은 대단하다. 사실 「낙하하는 저녁」이나, 「호텔 선인장」, 「하느님의 보트」 같은 작품들은 상당히 인상적으로 봤는데, 이번 작품집의 이야기들과 등장인물들의 정서는 좀처럼 공감하기가 어려워 애를 먹었다. 하지만 읽히기는 잘 읽힌다? 독자로서의 이런 상반된 독서 경험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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