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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누구니 - 젓가락의 문화유전자 ㅣ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3월
평점 :
이 책에는 ‘호모 나랑스’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것은 ‘이야기하는 인간’이란 의미의 학명이라고 한다.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파베르로서의 인간의 특성이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님이 밝혀진 지금, 인간이 일반적인 동물과 차별화되는 결정적 요인으로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특성, 다시 말해 허구와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삶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능력 혹은 특성에 대해 이 책은 말하고 있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면서 지식적으로도 빈틈을 거의 남기지 않았던 이어령 선생님의 가르침은 이 책에서도 여전하다. 특히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 잘못된 상식에 대해 바로 수정의 칼을 들이댄다. 예를 들어 젓가락이 주제인 글에서는 젓가락을 잘 쓰는 우리 민족의 관습과 뇌 과학을 연결하여 한민족이 우수하다는 이론이 허황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식사할 때 젓가락 아닌 손을 주로 쓰는 문화권의 인도인이 실리콘 밸리에 아시아계 인물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많다는 단순한 사실을 통해 입증한다. 오히려 젓가락과 관련하여 제대로 된 한국인만의 특징은 금속젓가락을 쓴다는 것과 젓가락과 숟가락을 짝을 이뤄 쓰는 유일한 민족이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젓가락 문화에서 수저계급론이 나온 배경을 다루면서 서양의 소크라테스가 나오고, 이 소크라테스가 의외로 금수저, 은수저 등의 계층을 나누는 인식의 기초 이론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하지만 부정적인 모든 기운을 뚫는 젓가락 문화의 깊은 의미가 이어령 선생의 해석을 통해 펼쳐진다. 수저 문화는 이어서 짝 문화로 해석된다. 지금은 붕괴되고 대립과 갈등이 한국 사회의 본질처럼 강화되어가고 있지만, 본디 우리의 문화는, 아니 인류가 발전한 원동력에는 짝이라는 요소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프시코드나 클라비코드는 사라졌어도 피아노(원래 이름이 ‘피아노포르테’, 즉 약하고 강하다는 의미)가 지금까지 살아남아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악기가 된 이유에서도 짝의 문화를 읽을 수 있다. 개인도 집단도 아닌, 그런 것들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특유의 상생 에너지가 샘솟는 짝 문화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된다.
인류의 기원을 원숭이 무리에서 쫓겨난 원숭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나무 작대기로부터, 즉 낙오자의 생존 전략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진화에 둔 설명도 흥미를 끈다. 그 나무 작대기, 다시 말해 부지깽이가 불의 발견으로 이어지고 화식이 시작되며 뇌가 발달하는 이야기의 파노라마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흠뻑 빠져들게 된다.
천년을 이어온 우리만의 문화유전자 코드, 젓가락을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이 책은 비록 이 땅에서의 사명을 본인은 완료하셨을지 모르나, 여전히 그 유산은 남아 살아 숨쉬는 활력으로, 배우고자 하는 자들의 영원한 스승으로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