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에서도 마찬가지다. 원시 인류는 생존을 위해 이동하기도 했지만 모든 경로를 스스로 설정하고 모험을 해야 했다는 측면에서 지금의 인류보다 훨씬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인류가 자동차 안에서 운전이라는 행위를 통해 하는 이동은 발전이라기보다는 점점 퇴보에 가까워진다고 할 수 있다. 자기주도적인 생각과 결정, 행위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이동의 범위는 더 넓어지고, 어디든지 마음껏 갈 수 있는 것 같지만, 전반적으로 세상이 점점 네트워크화되고 어디든 관리되고 있지 않은 곳이 없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더 큰 틀에 갇힌 인간의 존재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오히려 도로 네트워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동차의 폭발적 보급은 포드식 자본주의 생산방식을 통해 가능했다. 결국 우리가 하는 주체적인 운전 행위나 자동차라는 연장된 신체는 자본주의라는 특정 체제가 만든 시스템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 그 안에서 자신의 이동 능력이라든지 자유 같은 주제를 정체성의 차원에서 논한다든지 개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의 팔딱거림이 아니고 무엇일까? 결국 우리는 어딘가에 종속됨으로써 존재하는 처지일 수밖에 없고 그것을 망각하게 하는 것이 현대 문명의 주요 목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