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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다케타즈 미노루 지음, 김창원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2년 3월
평점 :
보는 행위에 기록이 더해지면서 발현한 꿈이 한 사람을 수의사로 만들고 자연 속에서 관찰하는 일과 동물들을 돌보는 일에 내러티브가 생기면서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이번에 새로 번역-출간된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다. 저자의 기억과 기록이 담긴 40여 년의 삶에서 주인공은 홋카이도 동부의 자연이다. 자연이 중심이 되어 사람을 이끌고 의미를 만들어간다.
고로쇠나무가 수액을 만들어내는 시기를 자연의 찻집이 두 달 동안의 짧은 영업을 하는 때로 묘사가 가장 먼저 인상적으로 읽힌다. 가장 첫 번째 손님은 오색딱따구리다. 이어 찾아오는 수많은 새 손님들의 향연은 시기심과 투쟁으로 오염된 인간의 연회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비참한 것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마지막 손님이 되어 먼저 온 손님들을 바라보며 즐겁고 차분하며 행복한 시간을 누린다. 도쿄에서 찾아온 친구와 찾아가 바라보는 유빙의 흐름에서 자연의 에로티시즘을 엿본다. 세상 그 무엇보다 깊은 순수함을 지닌 에로틱한 장면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홋카이도라는 보물창고의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책 전체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오호츠크해에 사는 바다표범의 새끼는 태어나는 자리에 따라 색이 다르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유빙 위에서 낳은 것은 털이 희고, 바닷가 암초 위에서 낳은 새끼는 쥐색을 띤다는 것이다. 이어서 봄이 한창 이어지는 가운데 여름의 징조를 가장 먼저 알리는 새 종다리가 소개되고, 뒤따라 순서대로 백할미새와 검은딱새가 기운을 더한다. 이렇게 겨울과 봄이 이어지는 계절에 목격되는 자연의 모습 하나하나가 저자에게는 행복의 재료가 된다.
책에 소개된 아사히카와 돗쇼산의 깊은 한가운데 비밀스럽게 자리 잡은 얼레지 군락은 사람의 마음을 훔칠 듯 신비스럽게 피어 있다. 아마 내가 산행을 하다가 이곳에 발견했다면 십중팔구 마음이 빼앗겨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그 자리에서 멍하니 보고 있지 않았을까 싶은 미묘한 끌림이 사진으로도 일어날 정도다.
들불이 없어진 초원에서 마른 풀들이 쌓여 이전에 흩뿌려진 야생화의 씨가 발아되지 않아 아름다운 야생화원이라 할 수 있었던 꽃밭의 풍경이 사라진 변화를 목격하며, 오히려 그 이전에 들불을 일으킨 주범으로 눈총을 받던 증기기관차를 다시 떠올리는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얼마 전 큰불로 전 국민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강원도-경상도 산불을 겪었던 우리로서는 인공 들불의 필요성을 논하는 장면이 선뜻 와닿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라는 오묘한 구도가 일본과 한국에서는 다르게 작용하고 있어 기억에 남는 부분이었다.
재미있었던 부분으로는, 얼핏 보면 소라 착각할 만한 크기의 일본사슴, 그중에서도 수사슴들의 다툼이었는데 흡사 호주의 캥거루들이 싸우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사슴이 저렇게 서서 멱살 잡듯이 싸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떠올리게도 하는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는 홋카이도라는 지리적 배경과 수의사라는 저자의 직업, 주변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하나의 완전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자연현상과 동물들의 앙상블, 그러면서도 현대 문명의 이기가 밀려들어오면서 야기되는 변화의 모습 등이 인간과 자연을 주제로 하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