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역사산책 : 한국사편 골목길 역사산책
최석호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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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하나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아직 시청하지 않은 독자라면 절대 18, 19페이지를 읽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버젓이 스포, 즉 작품의 주요 내용과 결말이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좀 황당했다. 아무리 드라마가 공개된 지 좀 지난 시점이라 하더라도 일부러 안 보거나 뒤로 미뤄둔 사람도 있을 텐데 이렇게 내용을 공개해버린다? 이건 좀 아니지 싶었다.

아무튼 이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준수하다. 우리가 걷는 길 그 중심에 우리의 역사가 있음을 알려준다. 길이 아니었던 곳도 많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길이 된다. 길이 있다는 것은 사람들의 수많은 발자취가 스며 있다는 의미다. 그 발자취 중 더 짙은 색채를 띈 것들은 사람들이 입혀준 역사라는 거창한 옷을 입고 우리에게 전해지기도 한다.

길에서 보이는 풍경에는 역사의 질곡이 서려 있다. 일제의 지배라는 비극적이고 수치스러운 역사가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우리에게 분노를 일으키는가 하면 이것이 무엇인지 인지하지도 못한 채 망각으로 우리의 치열한 역사를 허망하게 만들기도 한다. 살아 있는 사람의 동상이 세워졌던 자리를 통해 원치 않은 독재국가의 초상을 엿본다. 서울역에서 커피한약방에 이르는 남촌길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역사를 읽는다. 광복 이후 경성을 서울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이승만의 호를 따 서울시 말고 우남시로 하자는, 지금 봐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요구도 있었다. 그의 속내와 행보의 속성을 알아챘다면 그런 요구를 했던 자들은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부끄러움을 모르는 족속들이었기에 비상식적인 요구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책의 내용 중 눈에 띄는 몇몇 내용을 살펴보자. 먼저 신민회의 탄생에 상동교회가 관련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회영이라는 인물은 그 형제들과 더불어 대한의 독립에 투신한 가족의 전형을 보여준다. 독립의 밑거름이 되었지만 조국의 광복이라는 영광을 맛본 형제는 하나에 불과하다.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 자들만이 높은 자리에 차고 앉아 영원히 내주지 않을 듯한 탐욕으로 괴물처럼 명예와 부를 집어삼키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하지만 손자대의 이종찬이라는 인물이 김대중 정부에서 안기부를 국민서비스 기관으로 바꾸면서 민주주의에 공헌하는 일도 있었다.

부끄럽게도 안중근 의사를 부를 때의 표현인 ‘도마 안중근’에서 ‘도마’가 성경의 그 도마인 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세례명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승만이 역사의 대역죄인 중의 대역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인데, 이 책을 통해 윤치영이라는 인물 역시 그에 못지 않은 죄악된 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친일매국노 주제에 안중근의사숭모회 초대 이사장을 맡았고, 서울시장에 올라 시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온갖 핑계를 댄다.

맙소사, 기념 동상도 일본을 위해 작품을 만들었던 친일파 김경승이라는 대역죄인이 만들었다고 한다. 이 사람은 후에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로 가는 길목에서도 번번이 방해 공작을 펼친 인간쓰레기다. 이 나라의 근본이 얼마나 썩어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희망 없이 암울한 전망만 가득하게 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지금까지야 어떻게든 버텨왔다고 하지만 이런 오염된 역사의 뿌리에 대한 전방위적인 단호한 조치가 있지 않고서는 나라에 미래가 없을 것이다.



다행히 2009년과 2010년에는 안중근의사기념관을 다시 지으면서 이 친일매국노가 만든 안중근 의사 동상도 철거했고, 이어서 2013년에는 강남구 도산공원에 있는 안창호 선생 동상을 철거하고 새로 세웠으며, 2021년에는 정읍시에서 전봉준 동상을 철거하는 조치가 있었다고 한다. 읽다 보니 뭐 이런 뻔뻔스러운 인간이 있나 싶었다. 하지만 이런 작업들이 전 분야에 걸쳐 너무 늦게 이뤄지고 있다. 늦은 만큼 신속히 완료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이들 외에도 대중에게 잘 열려지지 않은 이완용급 친일매국인사를 추가로 소개하고 있어 역사를 다시 보는 눈을 길러준다.

이 책의 제목은 ‘골목길’과 ‘역사’라는 두 키워드를 ‘산책’이라는 단어가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골목길이라는 단어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간감과 역사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어쩐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이 책이 다루는 역사 기록들이 결코 가벼운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이전 골목길 역사산책 시리즈의 대상이 비교적 제한적이었던 데 반해 한국사라는 큰 범위에서 다루다보니 제목과 내용이 약간 엇박자가 나는 느낌도 든다. 가벼운 느낌의 산책보다 더 깊이 있는 역사기행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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