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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그리다 - 예술에 담긴 죽음의 여러 모습, 모순들
이연식 지음 / 시공사 / 2021년 11월
평점 :
죽음은 우리와 가까이 맞닿아 있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꺼린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우리의 언어 습관에 죽는다는 말은 여러 형태로 스며들어 있다. 대표적인 게 ‘~해 죽겠다’ 같은 표현이다. 그리고 장난치다가 농담처럼 ‘죽을래?’같은 표현도 사용한다. 큰 해를 입히려는 의지를 정말 사람을 죽일 것도 아니면서 ‘죽여버리겠다’, ‘넌 죽었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강한 뉘앙스를 싣기 위한 방법으로 죽음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활용하면서도 실제로 죽음에 대해 마주하는 인간의 심리는 무겁고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그리고 이런 심리는 인류 역사에서, 특히 예술에서 주목하는 주요 주제 중 하나로 항상 관심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신간 『죽음을 그리다』는 예술 작품에 나타난 죽음의 모습들을 바탕으로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인식을 탐구한다.
책에 소개된 작품 중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수전노의 죽음’은 돈과 물질도 죽음 앞에서는 전혀 힘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면서도, 반대로 죽음조차도 돌이키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을 생각하게 한다. 또 가에타노 프레비아티의 ‘파울로와 프란체스카’라는 작품은 성적으로 절정인 순간에 두 사람이 한 칼에 꿰어 죽은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이 작품은 죽음의 순간이 어떤 감정으로 채워질 수 있다면, 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쾌락을 선택하는 것이 과연 가장 좋은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특정인의 죽음이 여러 작품으로 조명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프랑스 혁명 정부의 지도자이자 유명한 저널리스였던 장 폴 마라라는 인물은 칼에 찔려 죽었는데, 어느 날 사를로트 코르데라는 젊은 여자에게 칼로 살해당한다. 이 사람의 죽음은 죽음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여러 정치적 입장이 투영되거나 그를 죽인 여인이 작품의 주제로 다수 다뤄지는 등 흥미로운 전개를 보여준다. 이후 마라의 죽음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프랑스 사회의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작품들로 재탄생하는데, 한 사람의 극적인 죽음이 예술의 영역과 사회적 차원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한편 좀 기괴스러운 것들로는 자살자나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이다. 특히 사울이나 유다처럼 성경의 인물들이 시대와 문화의 영향을 보여주며 다양하게 그려졌고, 세네카 같은 유명한 정치인의 죽음이 보는 관점에 따라 의연하게 그려진다거나 초라하게 그려진 대비를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 책은 회화 작품뿐만 아니라 조각품과 사진 작품도 더러 소개된다. 모두 죽음을 향한 인간의 복잡하고 다양한 인식을 투영한다. 책 말미에는 죽음을 통찰하는 여러 정의들이 인용되는데, 나는 하루키의 문장이 생각났다.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잠겨 있다” 죽음과 삶은 맞닿아 있다. 오직 인간만이 그걸 다른 색채로 덧씌우려 하지만, 결국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 바로 인생의 참된 겸손과 성숙이 찾아오는 시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