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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스피러시 - 미디어 제국을 무너뜨린 보이지 않는 손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박홍경 옮김 / 책세상 / 2021년 10월
평점 :
닉 덴튼이라는 인물이 운영했던 ‘고커 미디어’라는 곳은 온갖 스캔들이나 가십거리를 폭로하면서 이익을 얻는 매체였다. 폭로 대상이 되는 당사자가 누구이건 관계없이 아니면 말고 식의 엄청난 게시물 공세로 타인의 약점이나 뒷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본성을 취향 저격한 고커의 전략은 대성공을 거둔다. 그 수많은 피해자 중에 피터 틸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IT업계의 성공적인 투자자로 승승장구하는 중이었다. 고커는 그의 개인적인 사정을 동의 없이 함부로 게시했고, 그 일로 피터 틸은 멘탈이 흔들린다. 하지만 틸은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페이팔과 페이스북 등과 관련하여 엄청난 자산을 거머쥔 사람이었고, 이내 냉정을 되찾아 단순히 개인적인 복수심을 넘어 사회적 악으로 규정될 만한 고커 미디어의 만행에 심판을 내리기로 작정하고 은밀하게 한방을 먹일 준비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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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홀리데이의 신작 『컨스피러시』의 기본적인 내용은 어떤 언론이 어떤 한 사람의 치부를 드러내는 스캔들 기사를 터뜨렸는데, 그 역풍으로 모든 것이 날아간 이야기다. 그 과정을 담은 내용은 단순히 흥밋거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음모’라는 행위가 얼마나 깊은 역사를 갖고 있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확인하게 해주는 역할도 겸하고 있다. 이는 이 책이 추천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 번 쯤은 꼭 읽어볼 만한 전략사상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내용으로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게시물의 조회수가 표시되는 기능의 기원이 이 ‘고커 미디어’라는 사실이었다. 요즘은 조회수뿐만 아니라 추천수, 페이스북의 좋아요, 다른 SNS의 하트 등 다양한 형태로 관심도나 화제성을 나타내는 표시 기능들이 있다. 한때 싸이월드의 방문자수나 스크랩수 욕심으로 상식에 어긋나는 행태를 사진으로 올리는 일들이 벌어졌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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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나온 ‘고커 미디어’는 사람의 인생을 흔드는 것을 콘텐츠로 하여 대중의 뜨거운 관심과 이익을 얻은 매체였다. 요즘 근본도 없는 수많은 인터넷미디어들이 단지 사람들의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근거가 없거나 음란하고 폭력적이고 말초적인 내용만 반복해서 퍼나르는 소위 정보 쓰레기 바다 현상의 시작이 아마 이 매체가 아니었나 싶다.
피터 틸이 세운 거대한 음모가 실행되는 데까지만 4년, 모든 것이 승리로 끝나는 시점까지 도합 1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이 계획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고커 미디어가 완전히 몰락할 수 있는 치명적인 실수가 있어야 했는데, 바로 여기에 그 유명한 헐크 호건의 동영상 사건이 맞물리게 된 것이다. 단순히 옐로우 저널리즘과 왕년의 슈퍼 스타와의 추잡한 법정 다툼인줄로만 알았던 사건의 이면에 자신의 체면을 넘어 사회악으로서의 옐로우 저널리즘에 대한 심판을 계획했던 남자,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큰 성공은 거뒀지만 정작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비참한 개인사를 겪어야만 했던 한 남자의 사연을 교차로 목격하는 가운데 이야기는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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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책에 소개된 언론은 말 그대로 추잡한 가십과 유사 저널리즘에 불과했지만, 우리나라는 중앙일간지에서조차 검증 없는 보도, 명백한 정치적 의도를 담은 보도가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본질을 제쳐두고 대중을 호도하는 언론을 언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유튜브 찌라시와 별반 다름없는 수준으로 대중의 인식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은 그만 사라져야 할 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음모는 사악한 유사 언론에게 통쾌한 한 방을 먹이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그것을 보이지 않게 지휘한 주체가 상당한 자본가라는 사실에서 약간은 아쉬움이 들었다. 성숙한 시민 의식과 집단지성의 순기능이 이런 역할을 대신해줘야 진정한 의미의 언론 매체 필터링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우리 사회의 개개인인 얼마나 뛰어날는지 몰라도, 집단, 대중 차원에서 항상 저급한 여론몰이에 휘둘리고 있는 현실은 너무나 서글프다.
* 네이버 「리앤프리 책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