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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트 -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
최인철 외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1년 9월
평점 :
애초에 나와 너, 우리 편과 너희 편, 아군과 적군 등 모든 형태의 구별짓기와 차별, 혐오는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나온 주요 전략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초기 인류가 다른 동물들보다 약자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뭉쳐서 힘을 합하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런데 이 협력 체계가 인류를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생물 종으로 만든 것이다. 이윽고 형편이 좋아진 인류는 더 고상한 삶의 형태를 원하게 되었고 문화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 도시 문명을 일구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앞서 언급한 편 가르기 전략은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와 상대방이라는 구분이 생겼고, 이는 곧 상대보다 더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어떤 본능 같은 것 때문에 대상만 바꾸어 존속된 것이다.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아는 바대로 문명의 탈을 쓴 야만의 역사라 할 것이다.
요즘 들어 더욱 혐오와 차별의 시대라 칭해지고 부각되는 것은 정보통신의 발달과 관련이 깊다.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지니 오히려 현장에서의 갈등과 대립은 더욱 기세가 등등하다. 세대와 계층, 지역 할 것 없이 각각의 집단이 모두 자기들의 신념이나 이익을 위해 끝없는 다툼을 벌인다. 정당한 대결보다는 온갖 거짓과 비난, 폭언, 폭력이 난무한다. 이런 시대이지만 그래도 어느 한 곳에서는 좀 더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고군분투가 희망을 놓치 않게 한다. 이번에 새로 나온 『헤이트 -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는 바로 그런 이들의 고민과 연구, 해법을 위한 토론의 흔적들이 담겨 있다. 역사, 철학, 인류학, 심리학, 교육학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혐오란 무엇이며 그 기원과 역사적 전개, 현황, 해결을 위한 방안까지 풍성한 논의가 이 한 책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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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장 먼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혐오에 대한 보편적인 해법으로 거론되는 ‘공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다. 공감 역시 혐오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혐오”라는 감정과 행위가 더 혐오스러워지는 것은 그것을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과거 생존을 위한 차이의 인식과 편 나눔, 차별적 행태는 그 자체로 정당성을 가지지만, 문명이 발달하고 먹고 살 만해지니까 이제는 이익을 위한 경쟁이 인류의 삶의 낙이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순수한 생존 도구였던 혐오가 이제는 용도가 변질되어 상대를 기만하고 억압하고 파괴하는 도구로 부활한 것이다. 생존이 아닌 이익을 위한 도구로서의 혐오는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다. 그런데 이 혐오를 더욱 증폭시키고 확산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보조 혹은 주요 도구로 공감이 기능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공감과 혐오는 거울 이미지”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둘은 정말 동전의 양면과 같은 속성을 갖고 있다. 공감이 혐오의 무기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자기 집단에 대한 과잉 공감, 획일적 단순함, 진실의 입체성에 대한 무지, 자기 상처에 매몰된 감정 등이 있다. 한 마디로 공감이 편향되고 선택일 때 그 긍정적인 면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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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늘날 혐오 표현과 행위가 과학적인 근거를 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반적으로 유사 과학이라 부를 수 있는 비과학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례를 우리는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 나치의 홀로코스트, 오늘날 이슬람에 대한 분별 없는 공포감 조장, 백신에 대한 근거 없는 음모론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자기 합리화라는 덫에서 빠져나와 자기 객관화라는 구원의 영역으로 옮겨 가야 할 것을 주장한다.
저자들의 혐오 관련 강연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눈에 띄는 연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페이스북 감정 전이 실험’이다. 특정 사용자들에게 긍정적인 내용의 콘텐츠와 부정적인 내용의 콘텐츠를 노출시켰더니 긍정적인 내용에 노출된 사용자들은 긍정적인 글이나 사진을 남기고, 부정적인 내용에 노출된 사용자들은 부정적인 글이나 사진을 남기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외부 환경이나 영향에 취약한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재빠르게 선동에 나서 이익을 취하는 무리들이 특히 혐오라는 정서를 잘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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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놀라웠던 내용 중 하나는 이러한 대중 선동과 혐오의 정서를 적극 활용한 나치가 유대인과 슬라브족, 집시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국민 중에서 약자에 속하는 장애인들까지 비인격화하여 대량 학살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지경까지 가는 동안 아주 소수의 저항만 있었을 뿐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 집단 혐오에 서서히 동조하고 무감각해져가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이, 사유하지 않는 죄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 모두 조금이라도 “인지욕구”를 키워가야 하지 않을까? 조금 머리가 아프더라도 나를 둘러싼 세계를 스스로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