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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 겐고, 건축을 말하다
구마 겐고 지음, 이정환 옮김 / 나무생각 / 2021년 6월
평점 :
저자에 의하면 나무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부분은 나뭇가지나 나뭇잎이며, 나무의 대부분은 그 활동의 흔적, 즉 나무의 줄기를 구성하는 리그닌이라는 물질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가 보는 나무 몸통과 가지의 대부분은 과거 활동의 흔적이 그대로 구조화된 것이며, 그 역할은 나뭇가지나 나뭇잎의 생명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무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는 이야기로 이 책은 시작된다.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가지더 중요한 문제를 던진다. 그것은 우리가 겉으로 드러나는 흔적에 몰두한 나머지 그 흔적이 남을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 역할을 한 것들에 대해 간과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저자는 “흔적에 관한 정보가 비대해지면 나무는 우리와 동떨어진 존채처럼 느껴진다”고 표현한다. 즉 저자에게 이 책은, 나무가 남긴 흔적이 흙과 물, 빛, 바람의 역할 덕분이었듯이, 저자 자신에게 그런 것들이 무엇이 있었고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해보기 위한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단서는 ‘장소’, 여기에서 실마리를 찾아 왜 스스로를 ‘나무 같은 인간’이라고 결론 내렸는지 확인하는 것이 독자의 몫이다.
장소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저자의 어린시절의 체험이 건축 경향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가부장제의 특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을 증축할 때만은 꼭 현장에서 함께 모여 모든 가족들의 의견을 다 들어보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때의 경험이 건축가가 되고 나서도 되도록 회의는 현장에서 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경향을 만들어낸 것을 볼 수 있다. 또 저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오쿠라야마는 자연이 곧 삶의 근거이자 통로가 되는 환경으로서 인간과 자연이 긴밀히 연결된다는 감각을 저자에게 부여하였고, 이는 곧 저자의 건축에 있어 인간과 대지, 건물과 대지의 연결성 혹은 접촉성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는 배경이 되었다.
저자는 건축이 다른 분야와 구별되는 특징으로 “현전성”이 있음을 말한다. 이것은 눈앞에 존재한다는 의미로, 예를 들어 문학이나 음악은 먼 거리를 전제로 삼는 소통 수단이지만 건축은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과의 소통을 위해 발명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언급했던 ‘되도록 회의는 현장에서’라는 경향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건축은 곧 현실적인 물질성의 영역이고, 건축적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에게 있어 건축이란 ‘신축적’이라기보다 ‘증축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공터에 뭔가 새로운 것을 지어올리거’나 ‘거대한 행위’, 혹은 ‘기술적 진보’라는 측면보다 이미 있는 공간 혹은 장소의 결을 흩트리지 않고 공존하고 함께 숨쉬는 데 더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의 건축은 좀 더 자연친화적이고, 인공적 미를 지양하며, 경계짓는 것과 부자연스러운 것을 거부하는 경향을 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안도 다다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눈길을 끌고, 그와의 비교는 이 책을 좀 더 흥미롭게 하는 요소가 된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