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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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한마디로 여름 휴가 잘못 갔다가 치명적인 봉변을 당한 모녀의 이야기다. 평범했던 모녀의 삶이 맞닥뜨린 사태의 급변은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황당할 지경이다. 중남미의 환상문학 계통의 작품을 거의 접해보지 않아서인지 중편 분량의 소설임에도 읽어나가는 데 좀 힘이 들었다. 물론 몰입감이 뛰어났기에 읽어나가는 속도는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 빠르기는 했다. 하지만 이 몰입감은 잔뜩 불편함과 짜증을 유발하는 몰입감이다. 그래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의도적으로 쉬는 시간을 만들어 여유를 찾은 다음 다시 읽어나가야만 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불편함과 짜증을 유발하는 몰입감의 주범은 두 사람의 대화가 주를 이루는 이 소설에서, 그 두 사람 중 하나인 다비드 때문이다. 계속해서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라면서 중2병스러운 대화법으로, 도대체 자신이 무슨 상황에 처해 있는지 당황스럽고 두렵기만 한 니나의 어머니 아만다(이 두 사람이 봉변 당한 모녀)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역할이다. 물론 다비드도 시대와 장소를 잘못 타고나 이미 비극이 일상이 된 아이로 나오기는 하지만, 계속되는 모호한 화법에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비드는 작가가 암시의 장치로 마련한 인물이다. 아만다가 갑자기 몸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고 마음도 다잡히지 않는 혼돈의 상황 속에서 사태를 유추할 수 있는 유일한 실타래 같은 존재로 위치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이 왜 이렇게 미스터리한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고, 그런 대화로 이 소설을 채울 수밖에 없었을까? 그것은 등장인물들의 상황 자체가 기승전결이나 인과관계를 그리지도 못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 지점에서 소설이 시작하기 때문이다. 다비드를 비롯해 그의 어머니인 카를라, 아버지 오마르, 이상한 치료법으로 사람들을 돕는 건지 나락으로 빠트리는 건지 혼란케 하는 녹색 집 여인 등 아만다와 니나가 휴가를 보내러 온 마을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예전부터 오염되었다고 추측되는 환경 속에서 이미 오염된 채, 중독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로 보인다. 그리고 외부세계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살아온 모녀는 면역이 없는 상태에서 오염지역으로 들어온 인물들로 볼 수 있다. 그 두 세계가 만나면서 빚어진 비극이 이 소설의 중심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다비드는 아만다와 그의 딸 니나가 아픈 상태가 되는 시점을, ‘벌레가 몸에 닿는 순간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 벌레가 처음 몸에 닿은 정확한 순간을 아만다에게 자꾸 캐묻는다. 그런데 이 캐물음이 문제를 전면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는 데 답답함이 치밀어 오르는 순간이 온다. 왜냐하면 다비드도 아만다도 결국 그 문제에 먹혀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다행히 어린 딸 니나는 죽음의 위기는 넘긴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이 소설은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는 인상을 남긴 채 마무리되고 만다.

 

 

 

 

 

 

 

이 소설은 아리송하고 유쾌하게 읽을 수 없는 대화로 채워져 있지만,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마을을 떠나려는 모녀의 탈출 과정에서 작가가 어떤 문제의식으로 이 소설을 쓰고 있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것은 환경오염, 이익을 위한 유독물질 남용, 비인간적 자본주의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오염된 토양 위에서 인간성이 어떤 식으로든 망가진 모습을 보이고 어린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상한 반점을 지니고 있거나 심한 기형으로 태어나 가엾은 삶을 살아간다. 동물들은 이유도 모른 채 불쌍하게 죽어간다. 그렇지만 외부에서 들어왔다 의문의 물질을 이리저리 옮기고 다시 나가는 젊은 성인 남성들은 웃음을 띄고 있다. 이 기묘한 대비가, 즉 누군가는 웃음을 띄는 댓가로 누군가는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지금 우리에게는 표면적으로 낯설게 다가올지 몰라도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선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을 작가는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저 기묘한 대비가 우리 사회에서는 우리 사회 나름대로의 어두운 이면으로 펼쳐지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이 소설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현재진행형을 체험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독서였다고 생각한다. 이를 계기로 이미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유명한 라틴 아메리카 문학 거장들의 작품을 더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네이버 리뷰어스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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