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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80년 생각 - ‘창조적 생각’의 탄생을 묻는 100시간의 인터뷰
김민희 지음, 이어령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평점 :
이 책은 이어령 선생님을 한때 제자이기도 했던 저자가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이어령 선생님은 이 책의 내용이 자신의 회고록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자신과 과거 행적과 생각이 담겨 있지만 지나간 시간의 흔적조차도 오늘에 잇닿는 현재진행형이 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저자가 탐구하고자 한 것은 이어령이라는 한 탁월한 지성의 끝없는 열정과 에너지로 나타난 창조적 생각의 근원이 어디서 나오는지 밝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와닿았고 읽는 내내, 마지막 페이지까지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 바로 가정 환경의 중요성이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부모를 만나는가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었다. 이어령이라는 인물을 구성하고 있는 양대 축인 지성과 감성, 그중 지성은 아버지에게서, 감성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의 품에서부터 시작된 책과의 깊고 깊은 인연과 아버지의 호기심과 지적 욕구가 남겨준 물리적 유산들은 소년 이어령이 청년, 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설렘과 즐거움으로 지식을 추구할 수 있었던 근원적 에너지가 되어준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이런 어린 시절의 배경을 바탕으로 이어령 선생님은 평생을 ?가 !로 바뀌는 순간의 감동을 양식 삼아 살아온 축복받은 인물로 보였다. 물론 그것만으로 모든 탁월한 지성적 여정이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의 비극이 준 실존적 위기는 청년 이어령을 상당히 힙겹게 하기도 했다. 청춘의 낭만조차 가난과 배고픔 앞에서 한낱 거래수단으로 전락하는 아픔, 공부하는 데 필수인 사전을 팔지 않으면 데이트조차 하기 힘든 궁핍함 속에서 그래도 청년 이어령은 꿋꿋이 학문의 길을 정진해가는 인내와 끈기를 보여주었다.
이어령 선생님의 일생은 앞서 언급한 물음표와 느낌표가 결합한 ‘물음느낌표’적 여정이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창조와 파괴가 한 쌍을 이루는 수레바퀴가 쉴 새 없이 굴러가는 삶으로 표현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존재하는 수많은 뿌리박힌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인해 소멸되는 미래 가치와 가능성들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다. 그래서 문화부 장관으로 있는 동안 그가 바꾸려 했던 많은 정책적 시도들이 지속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책 뒷편에 수록된 이어령 선생님의 소년부터 현재까지의 사진들을 보다가 마지막 2020년 현재 시점의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다. 생각보다 많이 야윈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소년의 그것이었다. 여전히 스스로의 삶이 박제된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기를 원하는 순수한 갈망. 그것은 수동적인 자세로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지 않고, 모든 문제에 있어 스스로 우물을 파 샘물을 길어내고야 말았던 한 사람의 묵직한 삶의 고독과 영광의 반영이었다.
* 네이버 문화충전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