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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 ㅣ 현대지성 클래식 31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6월
평점 :
이 책의 후반부에서 밝히고 있지만, 나도 책의 제목에서 “공리”의 의미가 공공의 이익을 의미하는 한자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것은 원어상 “효용”의 의미라고 한다. 이 책의 내용을 반영한다면 ‘행복이라는 목적을 얻기 위해 도움이 되는 것’, 이것이 “공리”라는 용어의 의미다. 그래서 공리주의는 행복주의이기도 하고, 공리를 행복으로 바꿔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선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기준인 도덕의 제1원칙의 존재의 필요성을 역설한 후, 그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공리주의의 의미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불완전한 개념을 바로 잡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그 철학적 근거를 논의하기 전에 공리주의 자체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몇 가지 든다. 공리주의와 공리주의가 아닌 것을 구분하고, 공리주의에 대해 잘못 알고 있거나 잘 모르는 데서 오는 반대 의견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다.
공리주의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는 공리주의가 쾌락이나 즐거움을 반대하는 사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리주의를 주장한, 에피쿠로스에서 벤담에 이르는 철학자들은 공리적인 것 즉 유익한 것과 유쾌한 것 그리고 장식적인 것 모두를 같은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공리주의 사상에 의하면, 인간 행위의 목적이 되는 행복이 도덕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행복은 인간 행위의 규칙이요 원칙으로 정의될 수 있다.
공리주의가 인간의 행복을 추구한다고 해서 그것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 지향과 더불어 고통의 감소, 불행의 예방 및 완화를 목표로 하기도 한다. 공리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행복은 요란스럽고 사치스러운 어떤 것과는 다르다. 긍정이 부정을 누르고, 삶의 밑바탕으로서 인생이 제공할 수 있는 것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 평온과 적절한 흥분만으로도 행복의 획득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살았던 시기는 빅토리아 시대의 자신감이 팽배하던 시기로, 다시 말해 인간의 힘으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공업화와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큰 번영을 이루는 가운데 국민의 생활 수준도 전반적으로 높아지던 때였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공리주의가 추구하는 행복한 삶을 획득하는 것을 ‘현재의 비참한 교육, 현재의 비참한 사회 제도가 모든 사람이 그런 삶을 획득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저자는 세상이 발전하고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모든 사람이 혜택(행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부당하다고 느끼고 있었고, 이런 불균형으로 인해 사회가 점점 갈등을 빚어 불안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굳건해 보이기도 한다. 고통의 원천을 줄여나가기 위한 인간의 관심과 노력, 즉 사회 제도의 개선과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충분히 공리주의적 이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최대 다수의 효율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희생은 고귀한 것이지만, 공리주의는 희생 그 자체를 선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행복의 총량을 높이는 것, 그럴 가능성을 품고 있지 않은 희생은 낭비라고 보고 있다. 공리주의의 기준은 행위자 자신의 행복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행복이다. 개인의 행복과 사회 전체의 이해관계 혹은 공동선이 최대한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던 제러미 벤담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개념이 존 스튜어트 밀에 의해 더 깊이 연구되고 확장된 사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하고 기계적인 만족과 욕구 충족을 넘어선, 지적 존재로서 더 높은 차원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능력이 있는 인간의 가능성을 이끌어내고 사회적으로 실현하고자 한 밀의 독특한 비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네이버 문화충전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