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라르카 서간문 선집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지음, 김효신 옮김 / 작가와비평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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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문을 검색해보면 특수한 형식의 편지 문체라고 한다. 상대방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격식을 갖춘 편지글 정도로 보면 되겠다. 이 책은 단테, 보카치오와 함께 르네상스의 문학을 대표하는 3대 시인이자 최초의 르네상스인으로 불리는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문학적 유산 중 대표적인 서간문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이 책에 소개된 첫 번째 글은 실용적 동기가 없는, 순수하고 지적이고 심미적인 목적에서의 등산 과정에서 저자가 느낀 이전 삶에서의 사고방식과 현재 삶에서의 사고방식의 충돌과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이 나온 시대가 14세기 중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등산에서의 성찰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것이 근대적신체 활동 가운데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신체 활동과 내적 분석의 대상이 자기 자신인 것. 이것이 최초의 르네상스인 중 하나로 분류되는 페트라르카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두 번째로 눈에 띄는 글은 악과 허영, 번잡함, 퇴폐로 가득했던 아비뇽의 삶에서 벗어나 보클뤼즈라는 한적한 곳에서 은둔하며 남긴 글이다. 소박함과 건전함, 자유, 학문적 활동으로 가득한 삶을 누리고자 선택한 고독한 삶이라고 하는데, 이미 바깥 세상에서 사생아를 둘 정도로 세속적 욕구에 몸을 담았던 저자가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은둔의 삶을 선택한 것은 나에게 다소 무책임한 처사로 보였다. 그런 삶에서 나온 지적 성찰의 결과물들에 어떤 평가가 정당할까? 그가 선택한 삶과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의 모순이 나에게는 영 껄끄럽게 느껴진다.

 

 

 

 

 

 

서간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으로는, 페트라르카가 살았던 1340년대는 흑사병(페스트)으로 인한 고난의 시기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는 작가의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형태로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죽음은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개개인에게 있어서도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이것이 14세기에 구현된, 자기내면에 대한 탐색(자기의식)과 성찰로 이어지는 페트라르카 글의 특징에 잘 녹여져 있다.

 

세속적인 것에서 고차원적인 것으로 관심이 옮겨가는 와중에도, 그가 경험해온 것들을 종교적 가치를 구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부분도 눈에 띈다. 기독교적 가치관을 그가 활용해온 문학적 수단을 통해 좀 더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삶은 크게 세 사람과의 만남으로 인해 큰 변화를 겪었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키케로다. 비록 동시대인은 아니었지만 그가 남길 글을 통해 문학에 빠져들게 되었고, 평생의 업을 삼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문학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문학적 색채를 결정 지운 두 번째 만남이 청년시절의 연인 라우라 부인과의 만남이다. 일찍 떠나보낸 연인의 강렬한 인상은 끊임없는 연애시를 창작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삶을 궁극적으로 의미 있게 한 마지막 만남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만나면서부터다. 기독교적 세계관 안에서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일대 전환을 이룬다. 그러나 그가 그동안의 경험이나 지식, 기술 등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게 된 종교적 가치관을 부각시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면서 그의 말년의 문학은 새로운 꽃을 피우게 되었다.

 

 

 

 

 

 

그런데 또 하나 이 서간문을 통해 알 수 있는 확실한 것은, 기독교가 초기 교회형성 시기를 지나 원래 의미에서 얼마나 많이 변질되었는가에 대해서이다. 로마 제국의 국교로 인정된 이후 중세 교회 시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본연의 사랑보다, 정치적 권력의 도구로 타락하면서 그에 따라 수많은 교리나 의식들이 껍데기만 남고, 본질적인 기독교의 가치는 상당 부분 상실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촉발된 르네상스 인문 혁명은, 후에 종교개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에서 역사의 흥미로운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페트라르카가 보여주는 모습은 타락한 교회 권력에서 벗어나 한 개인으로서 신 앞에 정체성을 되찾아가는 인간의 과도기적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혼합된 형태의 기형적 기독교인의 초기 모습 역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네이버 문화충전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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