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별이 만날 때
글렌디 벤더라 지음, 한원희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9월
평점 :
일시품절


 

 

 

숲과 별이 만날 때는 최근 보았던 책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제목과 표지를 가진 책이었다. 그리고 총 4부로 구성된 이 소설의 각 부 제목도 마음을 흔드는 매력이 있다.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아름다운 자연과 조류학에 관한 몇몇 지식들은 이야기의 사이사이에서 휴게소 같은 역할을 한다. 각자 자신만의 아픔과 고민을 안고 있는 세 등장인물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한 가족이 되는 과정을 그려내는 소설이라고 이해해도 크게 무리는 없지만, 그 과정에서 작품의 호흡이 후반부에 급작스럽게 거칠어지면서 뜻하지 않은 긴장감을 일으키는 재미도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1부 요정이 버리고 간 아이, 에서는 현장 조사를 위해 일정 기간 어느 시골에 체류하게 된, 조류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인 조라는 여성에게 의문투성이의 한 여자아이가 찾아오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딱 봐도 가정에 문제가 있어서 집을 나온 가엾은 어린 여자아이인 것이 분명한데도, 자신의 이름을 별자리인 큰곰자리를 의미하는 얼사 메이저라 소개하며, 자신은 죽은 여자아이의 몸을 빌려 지구에 왔고, 다섯 개의 기적을 경험할 때까지 있을 예정이라는 뜻모를 소리만 하며 조에게 혼란을 준다. 당연히 경찰에 알려 집이나 보호기관으로 보내야 할 상황이지만, 자신의 집은 바람개비 은하즉 우주에 있다며 고집을 부리며 도망을 가는 등 소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한동안 보호자 노릇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작은곰이라 불리는 또 다른 혹이 달려 있기까지 한 상황인데…….

 

 

 

 

 

 

2부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 에서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계란 장사를 하는 게이브란 남성이 등장한다. 이미 1부에서 연구를 위해 조가 자리잡은 거처 옆집에 사는 남성으로, 경찰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일어난 소동을 통해 얼사의 존재를 알게 되고, 얼사를 보호하고 있는 조와 더 깊이 알게 되는 장면이 나왔다. 2부는 여기에 이어 셋이 마치 외딴 행성에 떨어진 한 가족처럼 짧은 기간이나마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이야기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게이브의 개인적인 문제가 이 작은 행복에 균열을 일으키게 된다.

 

3부 불완전한 여자와 마음이 병든 남자, 에서는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성인 여성과 성인 남성 등장인물이 가진 개인적 문제가 구체적으로 이야기에 녹아든다. 조는 어머니의 암 진단 과정에서 자기의 암이 발견되었는데, 여성으로서 결코 쉽지 않은 유방 절제와 난소 제거를 결정하고 수술한 인물이다. 자신의 몸을 치료하면서 어머니의 병간호와 임종을 지킨 조는 그 2년 간의 시간을 가슴에 품고 다시 학계로 돌아온 상황이다. 게이브는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울증 환자로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고령의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가족 농장에서 나오는 작물과 가축을 통해 가급적 자급자족을 하고 있으며, 닭들이 낳는 계란이 먹는 것보다 많아져서 동네 길목에서 계란 장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의 내면적인 문제의 원인이 뜻밖에 불륜이라는 기억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여기까지 보면 가정학대로 상처 입고 집을 나와 공상에 자기를 맡겨버린 어린 소녀와, 여성으로서 결코 가볍지 않은 투병생활을 거치고 다시 연구를 재개하는 대학원생,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사회적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건장한 남자 - 이 세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 갈등과 화해를 통해 희망을 말하는 다소 익숙한 이야기 구조를 띄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속도는 4, 숲과 별이 만날 때, 에서 급격히 빨리진다. 주인공 소녀인 얼사 메이저가 왜 허황된 이야기로 자기 자신을 외계인이라고 우길 수밖에 없었는지가 밝혀지는 과정이 매우 충격적으로 전개된다. 총격 장면이 나오고, 사람이 죽고, 주인공들이 치명상을 입게 된다. 갑자기 다른 장르로 돌변한 느낌이다. 그리고 현대 사회의 가장 어두운 면인 가정 붕괴, 약물 중독, 아동 학대 문제가 극적으로 부각된다. 독자는 이 소설이 사실은 우리 시대의 어두운 악마의 열매를 아름답거나 슬픈 은유적 장치들로 포장하다가, 마지막에 그 포장지를 뜯고 정말 지적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구조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네이버 문화충전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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