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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주주 -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무기
데이비드 웨버 지음, 이춘구 옮김 / 맥스미디어 / 2020년 7월
평점 :
기존 진보주의자들과 노동자 집단의 노동운동은 자본주의와 대척점에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과 생산성에 있어 자본주의만큼 인간에게 딱 맞는 경제시스템은 사실상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대안경제를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율배반적이고 자기배반, 자가당착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만 봐도 자본주의를 버리고서 다른 경제시스템 대안을 완성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대안을 찾을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혁신적인 대안을 발견해야만 한다는 결론인데, 이번에 국내에 출간된 「노동자 주주」는 그 요구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주자본주의의 최대 병폐는 경영자가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서 회사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은 ‘합법적’으로 행한다. 법의 허점을 교묘하고 창의적으로 해석, 활용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아지고 노동 조건이 악화된다. 자연스럽게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파업이나 시위, 농성 같은 것으로 대응하는 것밖에 다른 대응책이 없었다.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회사가 노동자들을 저렇게 부품 취급하는 것이 정상적인 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하겠지만, 국가는 그런 상황을 버젓이 용인하고 있다. 그것도 법적으로 가능한 토대를 제공하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파업하는 쪽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도 고울 수가 없다. 우리는 주로 ‘귀족 파업’ 같은 용어를 떠올리게 하는, 전체적으로는 성과도 없으면서 지도부만 배불리는 듯한 이미지를 계속 보아왔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가와 노동운동은 평행선을 달리고, 그 가운데서 배부를 놈만 배부르고 대다수의 노동자는 고단한 삶을 계속 이어간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자본가-노동자 간 갈등의 해법은, 최대한 간단하게 이해하자면, 노동자가 주주의 권리를 갖고 그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경우이긴 하지만, 우리의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비현실적인 사회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안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자 자본을 형성하여 자본가들과 대등하거나, 적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 개개인이 주식 몇 주 가진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개인들이 뭉쳐 봐야 결속력도, 전문성도 떨어진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는 미국 주 노동자층이 가입하여 자금을 축적한 다양한 분야의 ‘연금기금’의 역할을 소개한다. 이들이 노동자들의 요구사항과 권리에 대한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다. 책에서는 이것을 가능하게 한 혁신적인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을 우리 현실에 어떻게 대입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노동운동 혹은 진보 운운하는 입장에서는 하나의 긍정적인 숙제가 될 수 있다. 다만 그들은 자기 스스로 그 고집스럽고 모순적인 정체성을 내려놓아야 한다.
책에 소개된, 회사에 손실을 입히면서도 자기 이익만 챙기는 데 혈안이 된 경영자의 힘을 빼고 결국 퇴진시키는 과정이나, 수익을 내지도 못하면서 수수료로 한 몫을 챙겨 배불리는 헤지펀드나 사모펀드의 불공정한 거래 행태를 척결하는 투자금 회수 전략 등은, 연금기금이 노후를 위해 돈을 맡긴 노동자의 이익은 물론, 단순 경제 논리에서 봐도 상식을 벗어나는 현상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아서 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사례는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건강한 자본주의의 실현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이 책을 보면 우리의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등이 그런 약자들의 목소리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데, 이런 미국의 사례를 우리 현실에 맞게 적용해서 시험해줄 뛰어난 인물이 어디 없을까? 현재로서는 노동자들이 자본주의를 반대로 적극적이고 지혜롭게 이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발상을 현실로 옮겨와줄 정치인이나 노동운동가가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차피 주주들이 판치는 세상인데, 노동자들이 연대하여 대주주를 위협할 만한 주주로 올라서고, 믿을 만한 인물이나 단체에 위임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겠다.
* 네이버 문화충전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