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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 - 세계문학의 흐름으로 읽는
이현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독자로서 외부의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읽고 있는 책의 의미나 가치를 스스로의 관점과 방식으로 향유할 수 있다면, 그는 가장 고수에 속하는 독자계급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독서능력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기본적인 독서법을 참고하면서 책을 하나하나 읽어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경지일 것이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참 많은 독서 고수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저마다 자기만의 책 선택법과 독서법, 작품 감상과 해설 등을 소개하며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기도 하다. 온오프라인을 통틀어서 이런 사람들을 서평가라고 부르자. 그러면 이들 중에 가장 돋보이는 분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일 것이다. 개성적이고 수준 높은 서평으로 많은 독서가들의 지지를 받는 로쟈 이현우 씨의 신간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을까?
최근 나온 책들 중에 눈에 띄는 베스트셀러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단연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줄여서 ‘지대넓얕’)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이런 종류의 책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회피하는 경향이 강한 대중들에게 인문, 사회, 철학, 과학 분야의 지식 세계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기 위해 지식의 범주를 최대한 단순화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부담을 줄여주는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저자 나름대로 독자가 어떤 분야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틀이나 도구 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에서 저자는 나름의 분석과 평가를 통해 195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한국 현대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 10명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방식을 보면 앞서 말했던 것처럼 독자들이 각각의 작가와 작품들에게 일차적으로 접근하기 쉽도록 일정한 틀을 가지고 다루는 것을 볼 수 있다. 대체로 문학비평적 관점과 문학사적 관점으로 작가와 작품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때 저자는 그들의 업적이나 성취에 대한 조명보다는 그들이 가진 능력에 비해 더 높은 지평으로 올라서고 확장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생각을 자주 비추고 있다.
저자가 책에서 다룬 작가와 작품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앞서 말한 독자를 위한 틀이나 도구라고 한다면 구체적으로 그것은 현대문학이 가지는 숙명,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대의 역사성이 부여된 작품, 사회상이 반영된 작품,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인간상이 반영된 작품을 현대의 소설가들은 내놓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시기상 당대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 나오는 것을 ‘나와야 한다’는 표현으로 굉장히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중요한 문제를 다뤄야 중요한 작품이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작가들이 처음에 빛나는 단편을 쓴 다음에 그 세계관이 확장되어 더 깊고 넓어진 장편소설을 내놓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애석해한다. 예로써 황석영의 노동문제를 다룬 ‘객지’ 같은 작품이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더욱 심도 있고 폭넓게 다룬 장편소설로 발전되지 못한 경우를 든다.
한국현대문학이 유력한 단편들은 많이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더 심화된 장편소설로 나아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진정한 현대문학의 성취는 당대의 문제를, 그 문제의 핵심적인 모순을, 그 문제의 본질을 파고드는 것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이 현대소설이고 이 시대 소설가의 역사적 책무라고 한다. 작가는 그러한 단계를 밟아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래서 소설은 이야기가 아니라 근대의 발명품이라는 저자의 설명이 인상적이다. 고대로부터 이어온 이야기 양식과는 분명히 다른 구조를 지닌 문학작품이 현대소설이라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소설의 범주에 현대소설이라는 것이 속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렇게 현대소설을 접하는 하나의 도구를 친절하게 선물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 다양한 독서 도구와 틀을 접해가면서 자기만의 고유한 독서 능력을 보유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슴 설레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