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뉴욕타임즈에서 지난 20년간 출간된 주요 퀴어 문학 리스트를 기사로 써냈다. https://mobile.nytimes.com/2017/06/23/books/20-years-of-lgbtq-lit-a-timeline.html?referer=https://t.co/Zi9mNLJzOq?amp=1 (이미 읽어본 것들은 제외하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목록에 오른 한 권 한 권을 읽어볼 생각인데, 영국의 소설가 지넷 윈터슨jeanette winterson의 자서전 <why be happy when you could be normal?>이 그 첫번째 책이다.

<why be happy...> 굉장히 아름답고 통렬한 책이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인용하고 싶은 문구가 튀어나온다. 읽는 내내 사랑과 상실, 정체성의 발명과 재발견에 대한 윈터슨의 예리한 통찰에 감탄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데이비드 실즈의 책 제목을 조금 빌려오자면, ‘문학이 어떻게 나의 삶을 구원하고 지탱해왔는지‘를 고백하는 뜨거운 연서이기도 하다.

널리 알려진대로 윈터슨은 기괴하고 암울한 유년시기를 보냈다. 그는 갓난아기때 입양되었는데, 어머니는 종말론에 심취한 광적인 기독교도였고, 가정에서는 tv시청은 물론 성경을 제외한 어떤 종류의 독서도 금지되었다. 윈터슨이 사춘기에 접어들며 동성과 사랑에 빠지자 문제는 좀 더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억압적인 환경을 참지 못한 윈터슨은 결국 열 여섯에 가출을 감행하는데, 후에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해 영문학을 공부한 뒤 작가로 데뷔, 말 그대로 인간승리의 주인공이 되었다-_-;;.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oranges are not the only fruit>은 이 즈음의 이야기를 다룬 자전소설로 영미권에서 매우 큰 성공을 거뒀고 bbc에서 드라마로 제작되기까지 했다. 이 소설은 아직도 대표적인 게이 문학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된다.

비록 이 책이 뉴욕 타임즈에서 지난 20년간 출간된 대표적인 퀴어 문학 중 한 권으로 뽑혔고, 윈터슨의 레즈비언 정체성이 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why be happy...>는 단순히 그것만으로 평가하기엔 너무나 다채로운 면을 갖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보통 나는 퀴어 문학이나 영화를 앞에 두고 ˝이 작품은 단순한 퀴어 영화라고 할 수 없다...˝ 운운하는 사람들을 좀 짜증스럽게 여기는 편인데, (이와 관련된 가장 괴상한 사례는 영화 <아가씨>를 히데코와 숙희의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로 읽어낸 모 기자의 평론글일 것이다....) 이 책은 예외다.

책은 입양아들이 생애 초반부터 맞닥뜨리게 되는 거대한 공백에 대해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서, 1970년대 잉글랜드 북부 소도시의 노동 계급으로 사는 것에 대해서, 보수적인 환경 속에서 야망과 재능을 가진 한 소녀가 페미니스트로 성장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어떻게 공공 도서관과 문학이 자신을 구원했는지 증언한다. 특별히 아름다웠던 한 대목을 옮겨본다.

˝(...)I wasn’t reading poetry because my aim was to work my way through English Literature in Prose A–Z.

But this was different.

I read [in, Murder in the Cathedral by T.S. Eliot]: This is one moment, / But know that another / Shall pierce you with a sudden painful joy.

I started to cry.

(…)The unfamiliar and beautiful play made things bearable that day, and the things it made bearable were another failed family—the first one was not my fault, but all adopted children blame themselves. The second failure was definitely my fault.

I was confused about sex and sexuality, and upset about the straightforward practical problems of where to live, what to eat, and how to do my A levels.

I had no one to help me, but the T.S. Eliot helped me.

So when people say that poetry is a luxury, or an option, or for the educated middle classes, or that it shouldn’t be read at school because it is irrelevant, or any of the strange and stupid things that are said about poetry and its place in our lives, I suspect that the people doing the saying have had things pretty easy. A tough life needs a tough language—and that is what poetry is. That is what literature offers—a language powerful enough to say how it is.

It isn’t a hiding place. It is a finding place.˝

이 강렬한 책이 번역되어 한국의 독서가들에게도 널리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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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김혜리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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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의 전범 중 하나다. 나는 그냥 잘 쓰고 싶은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사람처럼‘ 잘 쓰고 싶다.˝ 신형철에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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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지음 / 마음산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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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과 김혜리가 추천사를 쓴 영화 비평서라면, 믿고 읽어도 좋다. 비평문 쓰기의 모범. 정확하면서도 감각적인 신형철의 문장들이 질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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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의 죽음
리사 오도넬 지음, 김지현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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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내내 감탄하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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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트 키즈 -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 젊은 날의 자화상
패티 스미스 지음, 박소울 옮김 / 아트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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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책이 있지 않나. ‘읽어야 할 책들‘의 목록들 사이에 늘 상위권을 지키고 앉아 있으면서도, 어쩐지 읽을 기회가 닿지 않는 책들. 패티 스미스의 이 회고록도 그런 책들 중 하나였다. 웃고 울면서 책장을 넘기다 남아있는 페이지가 줄어드는게 아쉽고 안타까워서 한숨이 나왔다. 조금 더 일찍 읽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더할나위 없이 완벽한 타이밍에 이 책을 읽었다는 기쁨이 공존한다.

십대 시절, 지산 록페스티벌에 패티 스미스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호기심에 앨범 <Horses>를 찾아 듣던 기억이 생생하다. Jesus died for somebody‘s sins but not mine 이란 첫 가사를 듣는 순간 이 음반이 내 인생의 음반들 중 하나가 될 것을 예감했다. 정말이지 <Horses>와 <Easter>는 내 십대 시절을 회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앨범이 되었고, 그즈음 미국과 유럽의 힙스터 청년ㅋ들 사이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는 패티의 신간 소식이 들려왔다. 언젠간 읽어야지 하며 뒤로 미루다가 책을 읽기까지 무려 7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다.

나는 패티-나는 이제부터 그녀를 패티라고, 나의 절친한 벗처럼 부를 것이다-를 더 잘 알고 싶어서 이 책을 폈는데 뜻밖에도 책이 나에게 남긴 것은 1960,70년대 뉴욕에 대한 끔찍한 그리움이다. 허름한 식당에서 앨런 긴즈버그를 만나 샌드위치릇 얻어먹고, 상심한 재니스 조플린에게 어깨를 빌려주며, 윌리엄 버로스와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돈이 궁해지면 헌책방을 뒤져 헨리 제임스 전집이나 윌리엄 포크너의 사인이 실린 초판본을 찾아 비싼 값에 되팔며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곳. 패티와 로버트를 기다리며 첼시 호텔 로비에서 빈둥거리는 상상을 한다. 19세기 말의 빈, 20세기 초의 파리와 함께 1960,70년대의 뉴욕을 꿈의 도시 목록에 올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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