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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의 의미 - 어느 재일 조선인 소년의 성장 이야기 ㅣ 카르페디엠 14
고사명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산다는 것의 의미. 제목과 표지를 보고 무척 심각하고 무거운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읽어보니 맞다. 심각하고 무겁다. 그러나 이 책은 독자를 책 속으로 끌어당기는 흡입력이 있었고, 오랫동안 깊은 인상과 여운을 남겼다. 엄청나게 몰입해서 읽었으니, 재미있었다고 해야 하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단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저자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말이다.
김천삼. 집에서는 마지막 자를 따서 ‘삼아’로 불렸던 그는 소학교에 진학하고 나서야 자신의 일본 이름을 만나게 된다. 일본 이름으로 불리지만 한국인에 대한 차별을 비로소 실감하게 되고, 자신의 가정이 얼마나 가난한지 깨닫게 된다. 사회 경험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피부로 뼈저리게 느끼게 된 차별과 가난의 굴레. 일본말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하여 반항심은 깊어지고, 자신을 차별하는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낙인찍힌다.
그러나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상냥함과 용기’였다. 5학년 때 만난 담임 선생님이 느끼게 한 진정한 상냥함. 그것은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인간’을 느끼게 하였다. 그러나 비로소 마음을 다잡은 그의 은인인 선생님이 군대에 가자마자 죽음을 맞이하다니, 이런 비극이 또 있을까. 또다시 망가지려고 작심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만약 이 책이 픽션이었다면 이만큼 감정 이입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참된 인간이 되었을 때 참된 일본인, 참된 조선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상냥함이란 참된 일본인, 참된 조선인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인종과 상관없이 모두가 인정하는 참된 인간이 되려고 노력했을 때 나보다 힘겨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법입니다. (188쪽)
'참된 인간'이라! 참된 일본인, 참된 조선인을 뛰어넘어 '참된 인간'이 되는 것이 오히려 참된 일본인, 참된 조선인이 될 수 있는 조건이라고 한다. 타자를 배제할 수 밖에 없는 국적 또는 민족이라는 편협한 테두리에서 벗어나, 인간이라는 공통분모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것일까. 매우 불리한 조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던 저자가 깨달은 것은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며, 그를 위한 가장 소중한 가치인 '상냥함'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고등소학교를 중퇴하는 시점에서 끝난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 부모 아래 태어난 재일한국인 김천삼. 그의 자전적 이야기는 일본과 한국의 불행한 인연으로부터 시작하여 일제의 한국 강점과 대륙 침략 등 역사적 사건들도 함께 들려준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를 느끼는 한 개인의 삶을 절절히 보여준다. 어른 뿐 아니라 청소년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 [산다는 것의 의미] 청년편이 있다고 하는데, 그 책도 꼭 한번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