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


지킬 박사와 하이드..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아니면 악해질 수 있다? 읽어 봐야할 문제작이 분명하다. 



















성석제의 투명인간과 조지웰스의 <투명인간>은 다르다. 그러나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결국 투명인간은 삶의 영역에서 추방된 존재가 아닌가? 웰스의 투명인간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은 보이지 않을 때 어떻게 행동할가? 이것도 인간의 본성의 문제다. 




















투명인간과 슈퍼맨은 통한다. 보이지 않는 힘, 강력한 능력... 그런데 슈퍼맨은 착하다. 그는 정말 착할까? 왜 슈퍼맨에서 악은 약한 인간이 감당할까? 이것도 이상하다. 


















원더우먼은 보통 여자다. 강하지 않다. 그런데 강한 왜곡이 일어났다. 아니 강하게 살아간다. 우리나라 엄마들처럼... 그런 신화는 어디서 온 것일까? 스파이터맨도 보통 남자다. 














스파이더맨은 수퍼거미에 물리면서 약한 사람이 갑자기 강해진다. 스파이더맨에서... 강한 힘은 강한 책임이 요구된다.는 명언 나온다. 














오해하긴 했지만 스파이더맨과 데스노트는 너무 닮았다. 정의를 위해 악인들을 제거하니까. 결국 모든 영화는 마니교의 악과 선의 대결... 로 보인다. 




아직 찾아야 할 책이 많다. ... 인간 본성을 강조한 다른 문학책은 없을까? 어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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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07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은 지 오래 돼서 인간 본성이라는 주제에 어울리는 소설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앤서니 버지스의 <시계태엽 오렌지>를 추가하고 싶습니다. ^^
 

신기하고 다행이다. 이런 책이 지금도 출판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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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07-05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그렇네요. 이런 책이 아직도 출판되고 있다니!!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요~ㅎ

낭만인생 2017-07-06 21:12   좋아요 0 | URL
기독교 고대 자료 찾으니 나오네요. 완전 신기합니다.
 

김석년 목사의 '질문하는 시리즈' 3권 <질문하는 행복>이 출간되었다. 아직 인터넷에 올라오지 않았지만 조만간 올라 올 것이다. 김석년 목사의 글은 쉬우면서도 진지하다. 스스로 진리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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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에서 6권을 구입했다. 이렇게하면 내가 소장한 민음사 세계 문학전집은 약 25권 정도 될성 싶다. 두어달 전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2.3>을 샀으니 말이다. 나는 개인적을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다. 단지 흥미 위주로 몇 권 읽었을 뿐이다. 소설을 싫어하는 이유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을 배우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 굳이 꾸며진 거짓?를 읽어야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최근들어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확신에 이르렀다. 소설은 거짓이 아니라 사실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 그리고 소설은 내가 아닌 작가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하나의 관점이라는 것을. 작가, 그러니까 번역되어 나올 정도의 작가는 보통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의 안목은 내가 평생 살아도 얻지 못한 많은 통찰을 자신 이들이다. 잘못 안 것이다. 진짜 독서는 팩트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소설이었다. 


어제부터 후안 룰포의 <뻬드로 빠라모>를 읽고 있다. 몽환적 느낌의 기이한 이 소설은 라틴문학의 거장으로 불릴 만큼 달콤하고 환상적 이야기다. 저자인 후안 룰포는 이 책을 쓴 푸 거의 절필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만큼 자신도 이 책을 능가할 소설을 쓰지 못한 때문으로 평론가들은 이야기 한다. 정말 신비롭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검색해 보니 제인 오스틴의 <설득>이 올 4월에 출간되어 합 348번까지 나왔다. 어마어마한 시리즈다. 언제 시간내어 몽땅 읽고 싶다. 


소설 읽기의 힘이 뭘까? 팩트가 아닌 거짓? 아니면 꾸며낸 이야기? 그동안 내가 생각한 소설의 그릇된 생각들이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논리적 구성과 사실성이다. 소설 용어를 잘 몰라 나의 글로 표현하면 그렇다. 전에 소설을 쓰고 싶어 몇 권의 소설 작법을 읽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 강조한 것이 상상력인데 실현 가능한 상상력이다. 즉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상을 하라는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소설은 쓸 수는 읽지만 공감하는 사람들이 극히 적기 때문에 책으로 출판되기도 어렵거니와 거의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훌륭한 소설, 위대한 소설은 공감력이다. 시대를 아우르는 인간 본연에 천착한 소설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소설인 셈이다. 그것을 에둘러 말하면 '실현 가능한 상상력'과 '공감'이다. 


소설은 내가 아닌 타자의 삶이다. 한 사람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오고, 그들의 삶과 인격, 선택과 종말도 그려진다. 소설은 사람 공부이고 삶 공부인 셈이다. 그러니 소설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책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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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06-28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 갖고 있는 책인데, 저는 모두 다 재미가 도통 없더라구요~ 왬테 지루한지...‘질투‘에서 완전 치를 떨었다죠..^^;;

그래도 소설을 읽어 가는 힘은 분명히 있나 봅니다. 소설읽기가 싫어졌을 때 <파리대왕>이나 <소립자> 또는 <은밀한 생>같은 작품을 읽으면 다시 소설을 찾게되더라구요~ㅎ

낭만인생 2017-06-29 12:23   좋아요 0 | URL
ㅎㅎ 소설 읽기가 보통 어려운게 아니죠. 저도 버벅 대며 읽고 있습니다.
 

책이란 개념이 생긴 것은 불과 천년이 넘지 않는다. 물론 그전에도 책은 있었고, 지금과 별단 다르지 않은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때의 책은 지금의 개념과 사뭇 달랐다. 책 한 권이 집 한 채인 경우도 허다했다. 우리가 손에 넣고 마음대로 읽을 수 있는 책은 종이의 발견, 즉 중국의 한지의 발견과 밀접한 영향을 받는다. 중국의 종이가 유럽으로 넘어가 인쇄의 발달과 더불어 지금의 책이란 개념이 만들어진다. 종교개혁은 책 때문에 일어난 운동이다. 아니 가능했다. 그러니 종교를 역사에서 배제할 수 없고, 문명을 종교에서 불리할 수 없다.  




읽기의 확장은 지식의 확장과 밀접하나 사생활과 쾌락에 더 친밀하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와 피셔의 <읽기의 역사> 중에서 독서, 즉 읽기에 집중한 것은 알베르토 망구엘이고 '역사'에 가까운 것은 피셔이다. 여행은 일종의 탐닉이고, 여행이다. 18세기 유난히 여행 소설이 많이 출간된 이유를 여행하지 못한 이들의 대리만족 때문이었다고 한다. 읽기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여행 자체다.  


















2015년 카트린 지타의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에서 혼자 여행하는 즐거움, 아니 이유를 밝히니다. 많은 공감을 일으키지만 실제로 편한대신 위험이다. 요즘처럼 혼자 여행 부추기는 시대도 없지만 낯선 해외여행의 경우는 위험천만하다. 필자는 혼자 여행을 권하지 않는다. 차라리 혼자 가까운 곳을 여행하는 것을 권한다.  


난 여행하면 항상 책을 챙긴다. 독서는 여행을 방해한다. 보지 못하게 하고, 듣지 못하게 한다. 책에 몰입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무리 유명한 곳에 가도 볼 것이 없다. 차라리 책이 좋다. 그래서 책은 여행을 위해서, 여행 때문에 읽는다. 그리고 여행 후에도 읽는다. 독서보다 좋은 여행을 보지 못했다.  



독서는 읽기, 앎, 호기심, 성찰, 반성, 상상, 수많은 수식어를 갖는다. 책 속에 길도 있다고 말한다 꿈도 책 속에 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책은 나를 읽는 것이고, 나를 보는 것이다. 그것에 실패하면 독서도 의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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